[싱가포르] 카페 탐방. by 뭉군



싱가포르에 상당히 긴시간을 머무르는 만큼 이번 여행에선 꼭 이런저런 카페를 들러 한량같이 지내보고 싶었다.

카페의 특성상 움직임이 최소화된 공간이라는 점도 내가 그곳을 즐기는 이유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솟는 싱가포르에서는 꼭 숨돌릴 곳이 필요했다. 다만 입안에 먹을 것이 투입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는 아드님은 내 취미활동의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잠시만 걸림돌]

떠나기 전에 여러 종류의 카페를 미리 탐색했다. 싱가포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소위 꼬피띠암(Kopi Tiam)이라 불리우는 공간의 대표격인 동아 스낵바(Tong Ah Eating House)와 킬리니 꼬피띠암 (Killiney Kopitiam) 그리고 시원한 실내에서 나름 향토적인 이름과 맛을 제공하는 굿모닝 난양 카페(Good Morning Nanyang Cafe) 등을 추천받았다. 물론 최근 몇년새 공격적인 모양새를 취하며 싱가포르 거리 풍경에 획일화를 불러오는 여러 체인점(Ya Kun, Toast Box, Coffee & Toast)들도 한번쯤 들러볼 요량이었다.

우선 잊혀진 옛 입맛을 불러올 겸 야쿤에서 카야(Kaya) 토스트를 먹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관광객들로 항상 시끌벅적한 라우빠삿(Lau Pa Sat) 푸드코트가 허름했던 시절 야쿤이라는 찻집이 태동한 곳이 이곳 어느 가게라고 들어 몇번 찾았는데 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혼잡한 곳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라우빠삿]

그래서 또 야쿤 2호점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최근 문을 닫았는지 발견하는데 또 실패하고 결국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체인점을 늘린 결과 어디에서나 보이는 표준형 야쿤 가게로 갔다.
[표준형 야쿤]

가격은 올랐지만 달달한 커피는 그대로였다. 급하게 커피를 들이키면 바닥에 찐득하게 남아있는 연유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커피다. 달작지근한 커피에 함께 먹는 것은 더 달콤한 카야 토스트. 조그마한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싱가포르 여느 카페에나 없어서는 안될 메뉴가 되어버린 존재다. 여기에 가장 기대되는 소프트 보일드 에그(soft-boiled egg)가 있다. 뜨거운 물에 잠깐(몇십초?) 계란을 투하했다가 꺼내면 이도저도 아주 흐물거리는 계란요리가 완성된다.


입맛이 변하는 것인지 처음 싱가포르에서 맛보고는 가장 느끼하다 여기며 싫어했던 이 메뉴가 이번 방문때는 가장 먹고 싶은 메뉴가 되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먹고 싶어 친구에게 부탁해 부어먹는 간장소스를 세병이나 받기도 했는데 처음에 몇번 먹다가 귀찮아서 간장만 썩히고 한동안 못먹었더랬다.

[맛있었지만 좀 짰어]


지금 싱가포르에는 야쿤의 성공에 자극받은 후발업체들이 득시글 거린다. 굳이 야쿤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돌리면 손쉽게 에어컨이 완비된 카페 체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얻어걸린 곳이 토스트박스였다. 굿모닝 난양 카페를 찾으러 두번이나 시도했다가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길에 들려 시원한 마일로와 아이스 커피를 들이켰던 곳이다. 가격은 1.5불로 머리가 기억하는데 양은 엄청났던 것으로 두눈에 기록되어 있다. 원래 물장사 인심이 후한 건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만.

시원한 카페들을 들러보았으니 꼬피띠암의 전통이 살아있는 옛날식 카페에 가보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꼬피(Kopi)는 커피의 말레이 단어고 띠암(Tiam)은 가게(shop)를 뜻하는 호끼안 단어의 조합이니 그 어떤 단어보다 싱가포르의 다문화 뿌리를 드러내는 말이었다. 물론 나의 한갓진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았던 아내였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내 고집을 관철시켜 동아 스낵바(사실 카페라기 보다는 전천후 스낵바 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어느 신문에서는 이곳을 카페가 아닌 Tong Ah Eating House 라고도 부릅디다)로 향했다.


정작 그곳에 도착하자 좀 당황스러웠다. 뾰족한 삼거리의 꼭지점에 위치한 건물 1층에 자리잡은 동아 스낵바는 카페라고 부르기엔 안락함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스무 평이 채 안되어 보이는 실내의 절반 이상은 부엌과 냉장고 등이 차지하고 있었고 홀에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달랑 한개씩 놓여있었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는 스트레이츠 타임즈(Straits Times)와 중국어 신문이 잔뜩 흐트러져 있어 주인장이나 단골 전용석이라는 느낌이 제대로 풍겼다. 결국 (창문이나 문도 없는 곳이었으니 실내외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실내에 손님을 위한 자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테이블과 의자들은 우리로 치면 좁다란 인도 위에 서 있었다. 유모차를 탁자 아래 주차시키니 사람들이 지나갈 통로를 막을 정도로 좁다란 길이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수명을 겨우 유지하는 선풍기와 허름한 차양막이 이들이 동아 스낵바 소유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누추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선풍기가 내뿜는 입김같은 밋밋한 바람마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주문을 받는 이가 없어 실내로 들어가 키친 앞을 서성여도 테타릭(Teh Tarik)을 당기느라 여념이 없는 주인장과 사모는 이른 아침에 찾은 관광객에게 관심도 없는 눈치다. 간신히 주문에 성공해 달달한 커피와 이번엔 약간은 두꺼운 카야 토스트를 맛본다. 야쿤 바삭하게 굽진 않았지만 적당한 두께와 부드러운 빵맛이 카야(kaya)잼과 섞이자 새로운 조합을 이룬다. 덥지만 근사한 맛이었다.


근사한 노천 카페를 기대했건만 그냥 한산한 길거리 가게였던 동아 스낵바에서 나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는 불편함이 일었다. 실제로는 3주 내내 쓰레빠에 반바지로 돌아다녀 지극히 편안한 옷차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갈 마음가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컬들의 생활을 흥미롭게 관찰하되 결코 뛰어들어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하는 것이 참 묘한 경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정말로 돌아와야 하는 날,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칙끈 라이스(난 이들의 Chicken Rice 발음이 귀에 착 감기는 것이 참 좋다)가 유명하다는 맥스웰(Maxwell) 푸드코트로 유모차를 밀었다. 유모차에 오래 앉아 지루해 하는 아들에게 사탕수수 음료를 선사하고 테이블 하나를 잡아 자리에 앉았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명한 닭밥집 앞에 줄서있는 누구도, 그리고 주변 테이블에 앉은 어느 외국인도 나와 아들이 오늘 싱가포르를 떠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오늘밤 내가 떠나도 맛난 칙큰 라이스를 즐길 이들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안녕 칙큰 라이스]

괜시리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달 놀고 먹다가 출근이라니!) 이럴 때일 수록 쓸 데 없는 생각이 번지는 시원스런 카페는 피해야 한다. 사람많은 푸드코트에 그렇게 멍하니 한동안 있었다.



수십 개의 테이블 위에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이 누구의 어깨에나 지워진 그 와중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게 제일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행이 끝나가는 마당에 생기는 헛헛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떠나야 할 이곳도 조금 더 머물다 보면 본래 살던 곳과 진배없는 일상적 고민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아쉬움이 좀 더 엷어질 것이다. 예전에 한국을 열렬히 동경했던 태국 친구가 서울을 구경와서 떠나기 전날 나에게 실망하듯 툭 던진 말을 곱씹어본다.  

"Life is struggle here, too"



[열심히 리서치한 결과]

1. 카페 주소 및 운영시간
Chin Mee Chin Coffee Shop: 204 East Coast Road, tel: +65 6345 0419; open Tuesday - Sunday 8:30 a.m. -4 p.m. (closed Monday)

Good Morning Nanyang Cafe
20 Upper Pickering Street, Telok Ayer Hong Lim Green Community Centre. Mon-Fri 7:30am to 6:30pm
Sat and Sun 8:30am to 5:30pm

Tong Ah Coffee Shop: 36 Keong Saik Road, tel: +65 6223 5083; open Monday - Sunday 7 a.m.-9 p.m. (Alternate Wednesdays off)
67 Killiney Road

2. 찻집 관련 기사

3. 꼬피띠암 기사

4. 푸드코트 종사자 임금수준





덧글

  • 쥐뉘 2013/06/22 23:38 # 삭제 답글

    아빠곰!! 싱가폴언제오셨던거에요? 연락도 안주시구ㅠ.ㅠ ㅋㅋㅋㅋㅋ
  • 뭉군 2013/06/30 22:50 #

    4월에 갔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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