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시엠립 골목길. by 뭉군



아무런 준비없이 캄보디아에 도착한 내게 친구는 물었다. "여행이냐 관광이냐?"

그래, 생각해 보니 프놈펜 공항에 발을 디딜 때부터 난 절반 이상이 관광객의 심정이었다. 당췌 어느 시점에서 입국비자 수수료라며 1달러를 더 징수할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정신 바짝 차린 관광객의 심정이었다. (나는 왜 갈수록 작은 일에만 흥분하는가!)

관광객의 긴장은 조금 우습게 풀려버렸는데, 어떤 제복 입으신 신사 분이 살짝 아내를 불러 18개월 아기의 비자 수수료로 10달러를 내라고 하자 정색한 아내가 그런 수수료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데 누가 그러더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당황한 제복 관료 왈, "우리 보스가 돈 받으라고 그러더라"며 말끝을 흐리고 여권을 돌려주었다. 그냥 이런 식으로 막 던져보고 걸리는 어설픈 관광객만 등치는 모양이다.

실제로 18개월 아이를 들쳐업고 어디 가서 여행자로서의 나를 푹 담궈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처음이라 그저 눈에 설은 장면들이 주입될 뿐, 이곳은 어떤 곳인가 차분히 공부하고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평범하게 사는 자로 평생 어딜 가서 일주일 동안 머물 일이 또 있을까.
 
그래도 그 와중에 아내에게 부탁해 시엠립에서 나홀로 두시간을 허락받은 것은 빛나는 성취였다(!)

두시간은 시엠립 시내 도보로 채워졌다.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을 때 비로소 여행온 곳의 평범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기에 내가 가장 즐기는 여행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풍경이 곧 눈에 들어온다. 사실 그걸 발견하려고 그렇게 걸어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음에도 일단 허름해 보이는 집에 들어갔다. 시엠립 첫날에 입에 넣고 황홀했던 캄보디아 쌀국수 Kuy teav 가 로컬 사람들이 먹는 가게에서도 같은 맛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마침 가게 사람들은 뮤직 비디오를 시청 중이었다. 우리는 노래방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그런 화면(노래 가사와 약간은 촌스런 설정샷들)에 젊은이와 늙으신 할머니가 심취해 있었다. 게다가 젊은이는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세대를 아우른 저 음악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슥삭슥삭 주방에서 조리를 하더니 쌀국수가 뚝딱 나왔다. 아, 또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때면 매번 빼먹었던 고수는 캄보디아 쌀국수에서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뭔가 향긋하고 얼큰한 느낌. 고기와 내장(?)은 남길 정도로 가득했다. 


배부르게 먹고 일어서는데 벽에 거린 달력이 보인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던 꼭 그 달력 모양이다.  하루가 지나면 북북 찢어서 측간에서 큰일 보고 뒷처리 하는데 사용되었다던 그 달력.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거리를 훓어 본다. 큰 길로만 다니다가 어느 순간 조그만 골목길이 보여 들어서니 사람사는 동네와 마주친다. 차량과 호객꾼 그리고 먼지로 가득한 대로와는 달리 평온함이 지배적인 곳이다. 마치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조금만 물러나면 군인들이 숨돌리는 막사가 존재하는 격이다. 탐험가 모자를 쓰고 영락없이 관광객 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 아저씨들은 체스인지 뭔지를 즐기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유난히 치과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이 조그만 동네에도 벌써 몇 개째 치과 간판이 보인다.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치아미백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며 여기저기 묻고 찾아봤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물이 좋지 않아 이에 문제가 많이 생겨 이를 치료하는 치과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평범한 캄보디아 인들의 생활수준으로 볼 때 치과치료를 지출항목의 상위에 둘 만한 이유가 고작 이가 잘 썩어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다가 날씨가 무더운 관계로 피신할 곳을 찾았다. 습기가 많지 않아 땀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태양은 그야말로 작렬하는 수준이었기에 어디 그늘이 필요했다. 기왕이면 골목이 들여다 보이는 2층 테라스가 있는 까페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럽을 왕창 쏟아 가져왔는데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혀에 착 달라붙었다.


짧았지만 근사했던 골목길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까먹기 전에 적어두기로 했다. 주인장에게 종이를 한 장 빌려 요점만 적었다. 치과, 물, 달력, 커피...

그리고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주제를 하나 생각했다. "아들아, 담배가 되었든 커피가 되었든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근사하게 뽑아낼 수 있는 여유로운 취미를 만들어 보길 권한다. 아빠는 개인적으로 담배보다는 커피를 적극 권한다." 요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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