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릭스와 메트릭 시스템 by 뭉군








“대체 왜 미국을 제외한 세계는 미국처럼 피트와 파운드를 안쓰는 거야?”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적어도 “난 모르겠다”나 “거 참 이상한 일이네” 정도의 얼버무림을 기대했던 나는 벙찐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 질문이 도발적이었나? 난 그저 너희 나라는 왜 메트릭 시스템을 따르지 않느냐며, 이게 니들이 말하는 미국 예외주의냐고 약간 핀잔을 주었을 뿐인데 말이야.


이 놈의 머릿 속엔, 아니 평균적인 미국인의 머릿 속엔, 미국과 미국 이외의 세계라는 구분은 수치상으로 1 대 200 이라는 불리함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동등한 이분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난 문득 미국의 존재가 두려워 졌다. 스스로 슈퍼파워임을 자각하고 있는 오만함이 첫째로 두려웠고 둘째로는 서서히 균열 조짐을 보이는 미국의 위상을 국민들이 인식하게 될 때 터질 사회적 아노미 상태가 세계 평화에 미칠 악영향을 떠올리다가 끔찍한 상상을 해버린 탓이다.


어쨌든 오늘 지하철에서 대충 접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내 미국인 친구가 해결해 주지 못한 의문 하나를 절반쯤 해소해 주었다. 기사에 따르면 제국주의의 광기로 전 세계를 분할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19세기에 합의하기를, 시간의 표준은 영국이 갖고(그리니치 표준시) 길이와 무게의 표준은 프랑스식(미터와 킬로그램)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킬로그램의 표준이 되는 무게치가 오늘날 그 절대성을 상실했다고 하는 다분히 포스트 모던함이었다만 나같은 치들이 물리학의 심오함을 헤아리기란 어려운 일이니 첫문단의 역사 부분만 날름 읽고 홈버튼을 눌렀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대충 유추해 보자면 이렇다. 영국으로부터 ‘왕의 존재’를 빼고 영국적인 요소를 상당부분 받아들인 미국이 길이와 무게의 단위 역시 피트와 파운드를 받아서 잘 쓰다가 나중에 백여 년이 흘러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해 국제표준으로 미터와 킬로그램을 정했다고 하니 미국도 여기에 참여해 볼까하여 기회비용을 따졌을 수 있다. 그러다가 나온 결론이 익숙했던 피트와 파운드를 고수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대로 써온 것이 아닐까? 물론 미국 기업들이 잘하는 로비도 있었을 테고. 마치 인체공학적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qwerty 자판을 여지껏 써온 인류의 귀차니즘과 동일한 맥락에서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


애드센스1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