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이 알려주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뭉군




궁금했다. 어린 시절 투덜대던 나와 형님을 이끌고 전국을 돌며 우리 가족만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행한 부모님이 왜 유홍준의 글에 그토록 빠지셨는지. 우리 오마니는 심지어 그의 사인회에 나를 동반하시어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에 친필 사인을 받기도 하셨으니 단디 빠지셨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유홍준이 쓴 육지편 문화유산 답사기를 거의 모두 읽어 보았지만 여전히 찾아내지 못한 궁금증은 그가 최근 내놓은 제주도 편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옛날보다 머리가 커져 있었고, 무엇보다 의문을 풀어낼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답사지가 제주도라면 꼼꼼하게 읽어볼 개인적인 동기도 충분했기에,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펼쳤다(라고 하면 상투적이다 못해 한물 간 표현일까요, 사실 펼칠 책장도 없는 e-book이었습니다)


책은 흥미롭게 읽혔고 유홍준의 글은 여전히 뭔가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울렁이게 했다. 이 정도면 여행 에세이로서 최고 덕목을 실현한 것 아닌가?

 

[울렁이지 않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자면, 꼭 제주가 아니라도 유홍준의 답사기는 늘 인기였다. 답사지가 갖는 자연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유홍준이 설명해 주는 그곳의 무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꼭 실물로 접하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한때 자가용을 소유한 중산층으로 하여금 설레임에 시동을 걸게 만든 작가, 유홍준의 힘은 어울리지 않는 두가지 - 느슨한 문체와 알게 모르게 풍기는 단정적 권위 - 의 묘한 어울림에 있다.


먼저 느슨하고 수더분한 문체를 말하자면, 그는 교수 시절부터 문화재청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어 가면서 문화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아주 능숙하다. 마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으레 확인하게 되는 여행지와 관련된 블로그 검색글처럼 유홍준의 글은 자칫 돌덩어리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며 숨을 불어넣는다. 그이만큼 돌들의 숨구멍이 어딘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진 또다른 무기는 'OO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담대함이다. 이를 미술사가로서의 전문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독선이라고 해야 할지는 판단 보류하겠다.

 


제주도 편에서도 그는 여전히 용자였다.


"그러면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어디를 가질 것인가? 그것은 무조건 영실이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 - 영실)


담대함이라는 기질에서 흘러넘친 그의 버릇은 "최고" 또는 "명작"에 대한 뚜렷한 인식 내지는 집착이다.


"추사는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를 제작했다" (제주도 서남쪽3-대정 추사 유배지 중)


"당시 제주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최고의 그리고 최초의 제주 민속 인문지리서다" (탐라국 순례3-오현단)


"제주의 옛 돌하르방 47기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고" (원당사에서 불탑사로)


"김지하 시인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제주의 서남쪽 2 - 송악산)


평생을 아름다움만 파냈던 유홍준에게서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이 불편하기는 커녕 배워야 할 지식일 수도 있겠다. 그가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온갖 여행서적에 "Must-see"가 판치는 마당에 그가 이 길고 긴 쇼핑 리스트의 길이를 늘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짧은 표현을 통해 유홍준은 아름다움을 계량화하는데 성공하는 한편 (미학과 필수과목으로 통계학을 지정하라!), 징그럽게 무거운 권위를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 얹어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 책을 파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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