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쓸쓸한 내리막길 앞에서, 마웅 예 by 뭉군








미얀마 군부의 핵심 조직인 국가평화개발위원회 (SPDC/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에서 탄쉐 장군에 이어 2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군부의 거물이다. 1937년 생인 그는 미얀마 국방대학(DSA/Defense Services Academy) 1기 출신으로 엘리트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때 "국방대학 출신이 아니면 승진도 시키지 마라" 는 노골적인 차별 발언으로도 군부 내부의 반발을 산 바 있다.

1970년대에는 미얀마에서 마약 재배로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의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마약 밀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산당 반군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며 군부 핵심세력의 인정을 받았다. 마웅 예는 썩 유능한 군인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1988년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후, 군부 통치기구이자 국가평화개발위원회의 전신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권력 중심에 서게 되었다.

나름 조용하게 부를 모았던 마웅 예는 미얀마 동부 사령관 시절부터 루비와 사파이어 탄광을 발견해 개발해 왔으며 미얀마 무역협회장을 역임하며 미얀마 산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권을 챙겨왔다. 그의 딸인 난다르 예(Nandar Aye)는 미얀마 산업부장관인 아웅 타웅(Aung Thaung)의 아들과 결혼해 유력 은행인 United Amara 와 광산개발업부터 수력발전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굴지 기업인 IGE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그간 마웅 예는 1인자인 탄쉐(Than Shwe) 장군과의 불화설도 심심치 않게 피어났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는데 2005년에는 마웅 예가 쿠데타를 일으켜 탄쉐를 쫓아냈다는 추측성 보도가 BBC 등 유력 언론을 통해 나기도 했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발발했을 때 아웅산 수치 여사 면담을 시도하는 등, 강경진압을 주장한 탄쉐 장군과 이견을 보이며 대립하다가 탄쉐의 후계 구도에서 확실히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당시 서열 3위였던 쉐만 장군이 당시 진압을 총지휘한 덕에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는 등 권력 핵심에 진출한 바 있다. 마웅 예는 탄쉐와 함께 은퇴선언에 반강제로 동참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술과 골프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웅 예는 2000년대 초반부터 뇌졸중에 시달렸으며 2012년 7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왼쪽 손 등이 마비되어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건강상태와 싱가포르 이송 등에 관한 사실이 미얀마 여러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자 이를 두고 몇몇 국내 언론이 미얀마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하면서 최근 급잔전된 미얀마 언론의 자유가 말로만 외쳐지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http://www.irrawaddy.org/archives/8752
http://www2.irrawaddy.org/article.php?art_id=20930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08/2007100800912.html
http://www.altsean.org/Research/SPDC%20Whos%20Who/SPDC/MaungAye.htm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


애드센스1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