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쌀의 자급자족은 불가능한 일인가? by 뭉군



필리핀 친구들은 늘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아무렴 우리보다 밥을 더 좋아할까 싶었는데 마닐라에 머물면서 지켜본 필리핀 사람들의 쌀사랑은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음식에도 밥을 곁들여 먹는 놀라운 식단을 가지고 있었다. KFC 치킨에도 밥이 나오고 로컬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인 졸리비(Jolibee)의 스파게티에도 밥을 내오는 것을 보고 정말 밥없이는 못산다는 말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2008년 필리핀에 머물고 있을 무렵, 그곳은 식량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은 저마다 충분한 양의 쌀을 수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을 때, 방글라데시, 카메룬, 이집트 등지에서 시위와 폭동이 시작되었다. 세계 최고의 쌀 수입국인 필리핀의 상황은 더욱 급박했다. 국민들에게 쌀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처럼 보일까 두려운 아로요 대통령과 관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굵직한 조처들을 발표했다. 쌀을 창고에 모아두고 사재기를 도모하는 김삿갓들을 때려잡겠다고 군대를 동원하기도 하고 태국에 가서 필리핀에 쌀을 수출해 달라고 울고불고 사정하기도 했으며, 국내 시장 쌀값 안정을 위한 보조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당시 일련의 위기사태를 보며 자연스레 들었던 의문 하나는 왜 필리핀은 쌀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세계 최고의 쌀수입국가로 남아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농사짓는 것보다 사서 먹는게 더 싼가? 기후상 벼농사는 어려운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필리핀의 유명한 쌀연구소 IRRI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는 세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다. 산악지형인데다 국토가 자그마한 섬들로 이루어져 있어 필리핀에서 쌀농사를 지을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둘째, 매년 급증하는 인구를 따라 쌀을 생산할 여력이 없다. 1억이 가까운 인구에 매년 2%씩 증가하는 다산국가인 필리핀에서 이에 걸맞는 경작량을 내놓기란 농업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셋째, 인프라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수로 등 관개시설 정비가 안되어 있으며 쌀을 운반할 도로들이 엉망이라 생산성 증가와 쌀의 원활한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

쌀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쌀을 자급자족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세번째 이유를 제외한 첫째와 둘째 이유가 거의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요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산아제한이 국가정책으로 가능할 것이나 필리핀 카톨릭 교단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있는 상황인 관계로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어려울 듯)



그러나 이에 대해 필리핀의 좌파 정치경제학자 월든 벨로(Walden Bello)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2008년 식량위기 시절에는 태국에 쌀을 팔라고 울고불고 사정하는 처지였다만 1993년까지 해외에 쌀을 수출할 정도의 자급자족에 버금가는 상태였던 필리핀이 쌀을 수입하게 된 데에는 일련의 구조적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Walden Bello, 2009, "The Food Wars" 3장)


필리핀이 쌀 수입국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 벨로는 우선 농업분야에 대한 정부의 상대적 무관심을 꼽았다. 1980년대 피플파워에 힘입어 마르코스를 끌어내리고 정권을 잡은 코라손 아키노 정부 시절부터 전임 정부가 남겨둔 엄청난 빚을 갚느라 농업기술 발전을 소홀히 했고 이러한 무관심은 무서운 빚쟁이들을 만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 벨로의 주장이다. 당시 World Bank 등이 채무국인 필리핀에 요구한 구조조정안이 나라경제를 건전하게 하기는 커녕 말아먹는데 일조하고 외려 국가채무를 상환하는데 급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 마르코스 정권 말기였던 1982년 7.5%였던 정부 지출 대비 농업투자 비율이 1988년 아키노 정권이 들어선 후 3.3%로 반토막이 나고 비슷한 기간동안 정부지출 대비 국가 채무 이자 상환 비율은 1980년 7%에서 1994년 28%로 급증했다니 농업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예산도 삭감당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정부의 투자도 부족했지만 주로 남의 땅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부들이 대다수인 필리핀의 쌀 생산성도 높지 못했다. 이러한 농업생산성의 저하는 1986년 민주화 이후에도 지지부진했던 토지개혁으로부터 기인했다. 1988년 CARP (Comprehensive Agrarian Reform Program)라는 토지개혁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사실상 지주들의 입김이 많이 반영된 누더기 법안이었다. 민주화의 아이콘이었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자신도 엄청난 땅을 가진 지주의 딸인지라 토지개혁을 화끈하게 추진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결국 토지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2008년 현재 CARP가 목표한 개혁 대상 토지의 불과 17%만이 재분배되었을 뿐이었다. 소작농으로 남은 농부들에게 땀흘린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꿈에 가까웠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경작이란 신바람나는 행위가 아닌 그저 굶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라고 인식되었을 것이다. 

벨로가 꼽은 마지막 이유는 무역자유화 바람이다. 정부의 투자 부족으로 농업분야가 힘을 못쓰고 있을 무렵인 1995년, 필리핀은 WTO에 가입한다. 이젠 낮은 관세로 상당수의 농산물을 들여올 수 있게된 것이다. 낮은 관세는 필리핀에 닥칠 두가지 변화를 의미했다. 이는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 농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뜻이었으며 정부 입장에선 수입품에 매기는 세금이 적어질 수 있다는 신호였다. 가뜩이나 빚갚느라고 인프라에 투자를 하지 못한 판에 세급수입마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수입량은 늘었지만 이들 품목들로부터 거두는 세금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전체 GDP중 5.6%를 차지했던 관세수입은 2002년 2.8% 수준으로 반토막이 되어 버렸다. 

자유무역이 필리핀에 미친 영향은 수입감소 뿐만이 아니었다. 해외상품들의 자유로운 유입을 허용하기 위해 국내시장의 빗장을 열어야 할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필리핀도 쌀시장 개방은 유보조항을 두고 있었지만 소량의 수입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처지였다. 1995년 전체 쌀 소비량의 1%를 수입해야 했으며 2004년까지 4%를 외국으로부터 들여오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이렇다할 지원도 받지 못한 국내 쌀시장은 이미 흔들리던 상태였던 터라 WTO가입 이후 필리핀은 할당된 의무수입량보다 더 많은 쌀을 수입하기에 이른다. 국내 수요를 필리핀 내 쌀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했고 수입쌀의 증가로 전반적인 쌀 가격은 더욱 낮아졌으며 농민들도 돈안되는 쌀농사를 접고 도시로,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농민들도 돈이 된다는 밭농사로 갈아타길 주저하지 않았다. 

벨로의 주장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선 IRRI가 쌀 자급자족이 어렵다고 하며 꼽았던 이유들(국토지형과 인구성장률)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 2008년 쌀 수급 위기에서 정부가 국가안보에 쌀이 미치는 영향을 느꼈더라면 이제라도 농촌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관련 정책(토지개혁, 인프라 확충 및 정비)을 펼쳐야 하고 이는 예전처럼 자급자족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벨로는 탁월한 학자인 동시에 정치인이기도 하다. Akbayan 이라는 사민주의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우리의 진보신당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당이라 그 시점이 아련하긴 하지만, 정당의 목표가 정권창출인 만큼 악바얀이 성장해 쌀 자급자족의 핵심인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끄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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