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홀연히 사라진 남자, 짐 톰슨(Jim Thompson). by 뭉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 시립미술관이었다. 아시아의 도시들이 겪는 각종 재앙에 대한 기획 - 아시아현대미술프로젝트 CITY-NET ASIA 2011 - 이었는데 방콕관에 들어가니 한쪽 벽면 가득 방콕시내를 그린 지도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심히 살피던 중, 짐 톰슨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적혀있는 걸 알았다. 누굴까? 서양인의 이름이 왜 방콕을 설명하는데 그리 많이 필요했던 것일까?



짐 톰슨(Jim Thompson)은 1948년부터 방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실크회사(Jim Thompson Thai Silk Company)를 설립, 운영했던 미국인이었다. 생전에 예술에 조예가 깊은 탓에 태국의 예술작품들을 수집하며 실크의 매력에 미끄덩 빠져든 그는 사양산업이던 태국 실크산업의 중흥기를 연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의 예술가적 안목때문인지 그가 방콕에 살았던 집과 내부에 전시된 컬렉션을 보기 위해 여전히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유물을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딴 짐 톰슨 아트센터(The Jim Thompson Art Center)를 설립하기도 했는데, 시립미술관 전시도 그 아트센터에서 출품한 작품들이었다.


실크회사를 차리기 전 독특했던 그의 이력도 흥미를 끈다.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던 중 2차 세계대전 이 끝나기 직전에 CIA 의 전신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 들어가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던 톰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세계에 유행처럼 번진 공산주의 도미노현상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투입된다. 이곳에서 그는 주로 부패하고 무능하지만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사랑을 받았던 세력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내 미국의 야누스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스파이 생활을 은퇴한 이후 자신이 활동했던 태국에 정착해 실크왕이 되었다.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으로 알려진 톰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그가 '동양과 서양의 가교'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실크라는 동양적인 소재에 서양식 기술을 접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가교론’의 핵심이다.

실제로 1950년대 태국의 실크산업은 수공예 수준으로, 서구의 합성섬유와 공장제 기계공업의 출현에 밀리고 있었던 때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방콕 근처의 수공업자들에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서양식 염료와 디자인을 가미할 수 있도록 나선이가 톰슨이었다. 그는 서양의 기술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태국 실크를 알리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양국가들을 대상으로 홍보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덕분에 헐리우드 영화 "왕과 나"에 짐톰슨 실크가 사용되기도 했다. 열성적인 홍보활동을 두고 톰슨은 "일종의 비주얼이 두드러진 선교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1997년 3월 26일자 기사). 태국의 화려한 예술과 문화에 대한 깊은 '믿음'이 없었더라면 행하기 힘든 일종의 '선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진정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채 사람들은 다른 이슈들로 짐 톰슨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에게 닥친 의문의 죽음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7년 3월, 자신의 61세 생일이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놀러간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그는 홀연히 사라졌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정글로 걸어들어가 감쪽같이 사라진 그를 두고 호랑이가 물어갔다, CIA 에서 청부살인했다 (그는 은퇴이후 태국에 정착한 이후 상당한 반미성향의 발언을 일삼았다), 라이벌 실크업체로부터 죽임을 당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구름처럼 피어났지만 그 어떤 것도 진실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정글로 들어갈 때 평소 복용하는 약도, 즐겨피우던 담배도 숙소에 남기고 사라졌다는 정황으로 보아 그는 작심하고 죽으러 갔거나 아니면 가볍게 산보를 떠났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그가 미국인이었던 만큼 미국 언론도 꽤나 흥미로운 기사를 많이 양산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상당수의 언론들이 톰슨의 실종 직후 구성된 수색대를 눈여겨 봤다는 사실이다. 수색대는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는데, 말레이시아 말로 orang asli 라 불리우는 숲에 사는 원주민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숲을 근거지로 하여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간 흔적을 잘 찾는 사냥꾼 스타일의 원주민들로 묘사되곤 했다. 그외에 상당수의 심령술사도 동원되었는데 한 신문에 따르면 당시 신과 접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한 말레이시아 청년은 "톰슨이 아직 살아있으며 악령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어 쇠약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톰슨이 돌아올 시간까지 예측했다고 한다 (New Straits Times 2004.2.1 기사). 물론 톰슨은 돌아오지 않았고 언론은 동남아시아의 수색 방식에 오리엔탈리즘 렌즈를 들이대며 낄낄거리는 모습이었다. 제3세계의 토착신앙형 사람찾기와 톰슨 생전의 (서양기술)선교인 이미지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한 자연인의 죽음이 '희생'으로 격상된 것이다.

톰슨 사후에 언론을 통해 증폭된 미스테리를 적극 이용한 것은 짐톰슨 실크회사였다. 짐톰슨 실크회사가 실크소재를 이용한 인테리어 분야에 진출했을 때 내건 슬로건은 "living with Jim Thompson" 이었다. 짐톰슨의 삶과 죽음을 알고 있는 대중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표현일 법 하다. 브랜드 전문가인 마이크 머피는 이를 두고 "브랜드는 신화와 이야기로 구성되지요. 짐톰슨의 페르소나에도 그런 아우라가 풍겨요" 라고 말하며 짐톰슨 실크의 판매전략에 창업주의 죽음이 도움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Far Eastern Economic Review 2001년 7월26일자 기사)

짐 톰슨이 정글로 사라지고 반세기가 지났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 브랜드로 그리고 자연인의 이름으로 -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그가 살던 집은 싼들해 지기는 커녕 관광객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그 모든 비결을 굳이 찾아보자면, 서구식 합리주의 사고를 가진 한 사람의 인생이 동양적인 요소라고 일컬어지는 갖은 미스테리와 감상적 추측들에 의해 적당히 버무려지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톰슨 평전 서평 (2013.7.2 업뎃)
http://asiapacific.anu.edu.au/newmandala/2013/05/24/review-of-ideal-man-tlc-nmrev-lii/

덧글

  • hojai 2012/06/19 16:31 # 삭제 답글

    아, 이 스토리 너무 좋네요. 저도 태국가서 짐톰슨 이란 이름을 듣고 의아하긴 했어요. 미국인이 실크왕이라니.
  • 뭉군 2012/06/27 00:19 #

    전 짐톰슨 아트센터에 가보고 싶어요 ㅎ
  • 짐톰슨하우스 2017/08/10 06:56 # 삭제 답글

    방콕 갔는데 짐 톰슨네 집이 유명하다길래 뭐지? 했는데 이 글을 보고 궁금증이 풀리네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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