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이 버마에서 무슨 일을. by 뭉군



조지 오웰을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글솜씨에 매료되어 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십여 년 전 타임지에 기고한 스티븐 마틴이라는 작가도 그런 연유에서 오웰의 흔적을 찾아 버마까지 간 열혈 빠돌이였나 보다. 사실 스티븐 마틴보다 더한 사람은 오웰 추적기를 "Finding George Orwell in Burma"이라는 책으로 써낸 Emma Larkin 이라는 작가인데 라르킨은 마틴보다 더 건조하고 차갑기는 하지만 오웰과 버마(의 정치를 포함한 모습)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알려주는데 반해, (정치에는 관심없다고 선을 그었던) 아래 마틴의 글에는 의외로 재미있는 구석이 보인다. 끝까지 번역해 보려고 했는데 의외로 긴 글이라서 일단 잘라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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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n Martin: “Orwell”s Burma”

Published: Time Magazine ('Time Asia', 'Time Traveler'), USA, New York. — 2002.

[원문보기]


오웰의 버마 I


방콕 시내의 혼잡한 도로변에 위치한 버마대사관 정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정문 옆에는 비자발급 관련 업무시간이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제대로 찾아온 듯했다. 철문을 두드리고 편지함 크기의 공간을 통해 빼꼼이 건너편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윽고 주먹만한 크기로 뒷머리를 말아올린 비대한 버마 여인이 건물에서 어슬렁 걸어오며 묻는다.

, 무슨일이시죠?”

관광비자를신청하려고요.”

여인은 다시 건물로 들어가 몇 분지나지 않아 신청서 양식을 들고와서는 철문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준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신청서를 받아든 나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데님을 덧댄 무릎 위에 두고 조심스럽게 칸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버마정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기에, 신청서에 기재한 나의 직업그래픽 아티스트였다. 작가들은 군부정권에 대해 뭔가 좋은 말을 해줄 리 만무한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나는 도통 정치에 관심이 없는 부류이기에 내가 벌이는 사기행각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버마를 방문하는 이유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흔적을 쫓기 위해서니까.


에릭 블레어(Eric Blair / 역주: 오웰의 본명)가 제국경찰의 신분으로 1922년 버마로 건너간 것은 일종의 고향방문이었다. 19년 전 에릭은 이 곳 인도 땅에서 영국 식민정부에서 일하는 하급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악명높은 아편부(Opium Department)에서 일했다고 한다) 에릭의어머니는 버마의 모울메인(Moulmein) 이라는 곳에서 자란 여성이었으며 에릭이 태어난 지 일년이 못되어 에릭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마친 에릭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리버풀을 떠나 랑군(Rangoon/지금의 양곤)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버마에 도착한 후 그는 만달레이에서 기초적인 훈련을 받고 버마 북부(Upper Burma)와 남부(Lower Burma) 지역을 돌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에릭에 대해 동료들은 과묵하지만 제국의 훌륭한 일꾼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관으로 버마에서 복무하는 동안 에릭은 버마어와 힌두어를 배우고 이 지역 사람과 문화에 대해 꽤나 방대한 양의 지식을 쌓았다. 심지어 토종 동식물에 대해 익히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년간의 제국경찰 생활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영국 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버마에서의 나날들 (Burmese Days)>이라는 첫 소설을 내놓는다. 소설이 발간되고 60년 넘게 지난 오늘날, 펭귄사의 “20세기 고전시리즈 해적판을 랑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버마의 상인들은 오웰이 식민지 시대 북부 버마 생활에 대해 쓴 밑바닥 이야기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잘 먹혀들 것임을 인지했던 것 같다.


내가 <버마에서의 나날들>을 처음 접한 것은 1997년 랑군(Rangoon)과 만달레이(Mandalay) 사이를 달리는 밤기차 안에서였다. 책을 다 읽은 나는 앞쪽의 서문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책을 정독할 정도였다. 그 후 이 소설은 내가 심심하거나 일하기 싫어 탈출을 꿈꿀 때마다 즐겨찾는 책들 중한 권이 되었다. 페이지를 쪼개어 읽고 한 문단 한 문단을 다시 읽으며 나는 새로운 디테일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오웰이 보여주는 통찰력의 세계로 빠져들어만 갔다. 오웰이 “Tuktoo(역주: 도마뱀의 일종) 한 마리가 벽에 납작하게 붙어 무시무시한 용(heraldic dragon)처럼 움직임이 없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읽으며 나는 정확하게 그가 뭘 이야기하는지 알 수있었다. 내가 사는 태국 북부가 북부 버마와 동/식물군은 물론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에, 나는 한 때 이 못생겼지만 해를 주지 않는 도마뱀들과 집을 같이 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오웰이 왜 <버마에서의 나날들>을 쓰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아직도 버마에 남아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온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역사와 정치체재로 볼 때, 버마는 오랫동안 고립되고 미개발된 상태였던 만큼 그의 소설속 건물과 지형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주민들이 있지는 않을까? 그날 방콕에서 비자를 신청하며 나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버마에서의 나날들>에선 사실 버마 수도인(역주: 지금은 Naypyidaw로 이전됨) 랑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이야기의 주된 장소가 북부 버마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랑군에 도착한 나는 만달레이로 가는 밤기차를 예약했다. 만달레이는 키플링(Rudyard Kipling)을 생각나게 하는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는 영국 식민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도자기 그릇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역주: 키플링은 만달레이라는 시를 쓴 바 있다.) 기억을 떠올린 만한 것은 (영국이 아니라) 오히려 3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국경이 맞닿아 있는, 버마의 가장 열성적인 무역 파트너인 중국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뉴욕이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라면 만달레이는 어떠한 소음에도 잠들 수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는 굉음을 내는 엔진들이 난폭한 도플러 효과를 내며 지나가고 오토바이들은 시내를 찢어버릴 듯이 전기톱 같은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도시를 가득 메운 경적소리다. 화가 나서 눌러대는 것이 아닌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로 경적을 울려대는 것은 버마인들이 운전할 때 빠지지 않는 습관이다. 그런가 하면 분주한 교차로에서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교통경찰관이 히틀러 같은 손짓을 하는 가운데 가열차게 호루라기를 빽빽 불어대고 있으니 가히 소음으로 점철된 곳이라 하겠다.


저녁때면 길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잦아들고 만달레이 전통의 시끄러움이 찾아온다. 대나무 줄기를 이어서 만든 벽에 그림을 걸어 놓고 그 앞에서 노래, , 꽁트가 뒤섞인, anyeint pwe라고 불리우는 전통공연이 길거리 곳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웰은 소설에서 길거리 공연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소녀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소녀의 얼굴엔 분이 잔뜩 칠해져 있어 램프빛에 비춰질 때면 마치 탈을 쓴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음악의 템포가 바뀌고 소녀는 쇳소리나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무대를 한바퀴 돌면서 엉덩이를 관객들에게 들이밀고 몸을 흔든다. 소녀가 입은 실크 론지(longyi)는 반짝이는 것이 마치 쇠붙이처럼 빛난다. 손과 팔꿈치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그는 엉덩이를 양쪽으로 살살 흔들어 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공연의 백미가 이어진다. 론지사이로 살짝비춰지는, 음악과는 별개로 떨어대기 시작하는 엉덩이다.”


쇼는 밤새 이어지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막이내린다. 그러나 오웰이 살던 시절에는 다행히도 음악과 목소리를 증폭시켜줄  커다란 스피커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만달레이에서 머물던 호텔에서 나는 이런 공연들 여러 개가 뒤죽박죽 섞인 채 벽을 통해 울려퍼지는 것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경과 말소리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나였건만, 그 쇼들 덕분에 이틀간 제대로 잠을 설치게 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만달레이의 거리공연 문화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외에도 세번째 유형의 소음이있긴 한데, 위의 두 가지에는 비할 바는 못되지만, 종교와 관련된 소음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인들의 이주와 기독교 전파로 인해 만달레이에는 교회와 모스크의 첨탑들이 불교식 탑들과 함께 풍경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고 이들 건물에서는 각자의 믿음을 알리는 소리들(징소리, 찬송가, 종소리,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 등)이 가득하다. 만달레이에서 제국경찰로 13개월을 살아본 오웰은 이러한 소리들과 친숙했을 것이다.


1923년 오웰이 나온 사진 중 하나에는 만달레이 시절 경찰훈련소에서 동료훈련생과 함께 제복용 벨트에 헬멧을 든오웰의 모습이 남아있다. <버마에서의 나날들>에서 오웰은 만달레이를 더럽고, 뜨거울 뿐만 아니라, 5개의 P [Pagodas(), Pariahs(똥개), Pigs(돼지), Priests(성직자), Prostitutes(창녀)]로 유명한 곳이라 칭한 바 있었는데, 오늘날 만달레이는 스님들이 돌보는 절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창녀, 돼지, 똥개들은 모습을 감춘상태다.


(기회되면 2편에서 이어짐)

 


덧글

  • 인형사 2011/10/05 00:30 # 답글

  • 뭉군 2011/10/06 21:07 #

    오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번역문에 반영시키겠습니다. 그나저나 오웰 말대로 무시무시하게 생겼네요 ㅎㅎ
  • 인형사 2011/10/07 02:09 #

    귀엽진 않고요?
    그러고 보니 "heraldic dragon"은 문장에 그려진 용이 아닌가요?
  • 뭉군 2011/10/07 22:11 # 답글

    네 무늬없는 게코는 귀여운데 얘는 어째 좀 징그럽군요... 문장이라면 커튼인가요?-.- 글쎄요 원문만 보면 그냥 tuktoo를 표현한 것 같아요."A tuktoo clung to the wall, flat and motionless like
    a heraldic dragon."
  • 인형사 2011/10/08 01:07 #

    문장이란 가문, 단체, 국가들을 상징하는 그림이지요. 중세 유럽에서 기사들이 방패나 갑옷 위에 걸쳐입는 옷에 자기 고유의 그림을 그려 자신을 표시하고 다른 사람과 구분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지요.

    요런 것 있지 않습니까?
    http://en.wikipedia.org/wiki/Heraldry
  • 옌스터 2016/01/30 01:58 # 삭제 답글

    정말 좋네요. 버마시절 사들고 미얀마 국경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댓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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