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깨끗한 정치를 위하여, Bersih 2.0 by 뭉군



말레이시아에 bersih2.0 라는 대중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뜻풀이를 하자면 clean 2.0 이라는 의미의 이 시위는 제목 그 자체로 두 가지를 내포한다. 하나는 말레이시아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어 깨끗이 할 필요가 있다는 것(clean)과 또 하나는 이런 종류의 시위를 벌써 두번째 하고 있다는 것(2.0).


청소가 필요한 영역은 (아마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바로 정치, 그중에서도 근대정치의 모든것이 담겨있는 '선거'다. 자신들의 뜻이 왜곡되고 있다고 느끼는 일부 국민들이 깨끗한 선거를 외치면서 청렴공정선거연합(The Coalition for Clean and Fair Elections)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는 지난 2007년에도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주장한 바인데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행태를 보이는 정부여당에 의해 보기좋게 진압당하고 올해 두번째로 꿈틀거리는 중이다.


참고로 bersih 2.0 시위에 대해 정부가 보인 반응은 참으로 익숙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참, 아래 기사를 보자.



위 기사에서 말레이시아 나집(Najib) 총리는 이번 시위를 두고 "침묵하는 다수"가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7월 9일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1600여 명을 잡아가고 최루탄과 물대포를 시민들에게 쏘아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분명 시위대의 주장으로부터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시위대가 관철시키고자하는 8가지 주장은 의외로 평범하다.


1.     선거인 명부를 정리하라

죽은 사람, 주소가 몇 개가 되어 투표를 주소 수 만큼 할 수 있는 사람 등은 이제 많이 해 묵었다 아이가. 고마 해라.


2.     우편에 의한 부재자투표를 개혁하라

외국에 사는 국민뿐 아니라 국내거주자들도 사정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고.


3.     지워지지 않는 잉크를 사용하라

팔에 찍은 투표했다는 표시가 지워지면 웃기잖아. 두 번 투표할 수도 있고.


4.     최소한 21일의 선거유세기간을 보장하라

열흘도 안되는 현재의 선거기간은 너무 짧다고.


5.     미디어에 대한 자유롭고 공정한 접근을 허하라

웬만한 주류언론은 정부여당과 직간접 관계를 가지면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몹쓸 언론 여기도 많다.


6.     공기관의 중립성을 강화하라

사법부, 법무장관, 반부패위원회, 경찰, 선거위원회 등 엄정중립하라.


7.     부패의 사슬을 끊어라

두말하면 잔소리


8.     더러운 정치를 멈춰라

깔끔하게 정치하자는 이야기렸다


이와 같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 부상자들이 머물고 있는 병원에 최루가스를 고의적으로 뿌렸다는 사실까지 카메라에 찍혀버렸다. 이러한 폭력적 대응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 키운 나머지, 이 사건은 국경을 넘어 해외에 사는 말레이시아인 커뮤니티를 자극했고 요 며칠새 그들의 분노는 대중 시위로 표출되었다. 대만, 호주, 싱가포르, 영국 그리고 한국 등 20개국에서 노란색 옷을 입은 말레이시아인들이 모여서 자국 정부를 규탄하는 대열에 참가했다. (왜 노란색이냐고 말레이시아 친구에게 물었는데 그저 노란색이 이번 시위대가 정한 색깔이란다. 하기사 노사모가 왜 노란색이라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 없지)


(Bersih 2.0 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Steering Committee of Global BERSIH 2.0 라는 단체에서는 아래와 같이 각 도시별 참가자 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City (attendance): Wellington (10), Auckland (35), Christchurch (15), Brisbane (100), Sydney (500), Canberra (40), Hobart (30), Melbourne (1000), Adelaide (150), Osaka (14), Seoul (35), Suzhou (20), Taipei (300), Shenzen (20), Hong Kong (80), Perth (120), Singapore Online(63), Singapore Picnic (200), Dubai (40), Cairo (100), Istanbul (2),Stockholm (10), Graz, Austria (2), Zurich (42), Geneva (12), Paris (30), London (450), Glasgow (30), Belfast (25), Dublin (60), Cork (14), Limerick (11), New York City (130), Ottawa (11), Washington DC (50), Chicago (35), Los Angeles (85), Portland, OR (14), San Francisco (120)


Total attendance for all 38 locations = 4003 participants.


그 중 몇몇 시위를 둘러보자면,


 

 [대만 자유광장에 모인 말레이시안 시위대 / 사진출처: 친구 페이스북]


[싱가포르 홍림공원에 모인 말레이시안 시위대. 구호도 배너도 없이 그저 담소만 즐기다가 헤어졌다는 후문이.../ 사진출처: Strait Times]

[광화문에 모인 시위대 / 사진출처]


해외 시위대의 몇가지 공통점이라면, 주요 참가자들이 중국계라는 점과 젊은 층이 많다는 점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말레이시아 탈출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주로 마하티르가 정권을 잡은 이후 진행되온 말레이계 우대정책에 소외감을 느꼈거나 희망을 버린 중국계들이 자녀들을 해외유학을 보낸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는데, 해외에서 유학중이거나 일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 젊은이들은 왜 국내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상당수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당한 차별과 설움은 조국을 버리고도 남을 정도인데 왜 굳이 노란색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선 것일까? 결국은 다시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집 떠나면 애국자 된다고, 원거리 민족주의라도 작용을 한 것인지 궁금했다.


이와 관련해서 평소에 말레이시아에서 받은 숱한 설움에 대해 토로하고 다녔던, 그래서 자기는 태국에서 살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닌 중국계 말레이시안 친구 하나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비장한 말을 남겼다.


Yellow shirt, national flag, and a brave heart to love my country, I am ready for you, Malaysia!!



그 친구를 비롯한 젊은 말레이시아인들은 어쩌면 소박한 희망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희망이란 무엇이고 도대체 왜 젊은이들은 희망을 품게 되었을까?


우선 bersih(깨끗함)이라는 말이 주는 과격하지 않은 어감은 이들의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의 높이를 크게 낮췄을 것이다. 90년대 말에 오랜 독재자 마하티르가 무너질 무렵 터졌던 reformasi (개혁)라는 민주화 운동이 주었던 비장함과는 달리, bersih 2.0이 외치는 강령과 구호들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다. 거창한 담론을 위해 목숨을 거는게 아니라, 그저 공정한 룰을 만들자는 모토에 이끌려 장삼이사 너도 나도 참여했을 것이다. 결국 위에 친구가 말한 brave heart는 그리 높은 수준의 용감함을 요하지는 않았던 것이고 그래서 다들 상대적으로 쉽게 '용감한 말레이시아인'이 되려고 시위에 참여했을 수 있겠다.


시위 주제가 주는 가벼움은 의외의 효과를 한가지 더 불러왔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깨끗한 선거 하자는데 누가 반대하는가?' 그런데 정부는 어이없게도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깨끗한 선거 하자는 것 뿐인데 사람을 방패로 찍는 정부는 도대체 제정신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상식이 깨지는 경험을 한 국민들은 의외로 쉽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위의 두가지 이유 외에도 머릿속을 맴도는 가장 그럴듯한 답은, 부연할 필요없이, 국민에게 국가라는 존재가 지닌 엄청난 그림자이며 영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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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pace Cat 2011/07/14 00:43 # 답글

    한국의 80년대 상황과 미국의 현재 공화당의 행태를 섞어놓은 듯한 현상이네요. ㅇ_ㅇ
    나라를 떠나 타향살이 하는 청년들 마음은 다 같은가 봅니다. 나오고 나니 제 나라가 다시 보이고, 나와보니 안보이던 자랑스러운 모습도 더 보이고... ㅎㅎㅎ (제 얘기. -ㅂ-;;)
    중국계 말레이인 제 친구도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하지, "중국계"란 부분은 별 의미가 없는 듯 하더라구요. 중국어도 말하고 듣기는 되는데, 읽고 쓰기는 힘겨워하던 친구였슴다. ㅋ
  • 2011/07/20 08:0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뭉군 2011/07/20 21:16 #

    오오 말레이시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군요! 포스팅에 대한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
  • Mahasiswa 2012/04/22 23:40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과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뭉군 2012/04/25 22:48 #

    요새 bersih 3.0도 나왔더라고요 ㅎㅎ
  • wus 2012/07/06 18:36 # 삭제 답글

    값진 포스팅 고맙습니다.
    녹색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간 친구들이 있어서 저도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거든요.
    다른 글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가겠습니다 :)
  • 뭉군 2012/07/31 21:24 #

    넵! 값진 말씀도 감사해요 :)
  • Bnomad 2012/07/29 17:21 # 삭제 답글

    말레이시아 살면서 bersih가 뭔지 넘 궁금했는데~ 아 잘 읽고갑니다.. 말레이시아 중국계들의 차별 대우등은 외국인인 저도 많이 실감할 수 있었어요~~
  • 뭉군 2012/07/31 21:25 #

    이상하게 이 포스팅에 댓글이 많이 달리네요 ㅎㅎ 그나마 동남아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사건이어서 일까요?
  • ryan 2015/03/20 02:17 # 삭제 답글

    Bersih..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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