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II] 산만한 출장기 by 뭉군

6/8


오늘 사실상 출장의 모든 일이 몰려 있어서 어제 잠을 많이 못잤다. 한 시가 되어 잠든 것 같은데 긴장했는지 여섯시도 안돼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내 출장의 벗, 채널뉴스아시아는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일찍부터 행사장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보내준 디아나라는 친구는 한국학과 4학년인데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중앙대에서 연수도 받았다는데 똑똑하고 총명한 아가씨였다. 이름이 서양식이라고 말하니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가 고향인 스마랑을 방문해서 왕비의 이름을따서 그리 지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순수한 분이신 것 같았다.
[대략 이 때인가... / 사진출처]

여덟시에 워크숍 개회식을 참석하고 이사장님의 축사를 대독했다. 생각보다 참석교사들이 영어를 못해서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축사 초반에 인도네시아어 몇마디를 했는데 그걸 듣고 사람들이 내가 인도네시아 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쉬는 시간에 계속 인도네시아 말로 나와 소통을 시도하는 통에 곤혹스러워 혼났다. (나중에 디아나의 말을 들어본 즉, 내 인니어 발음이 현지인 뺨쳤다고 말한다. 그래 내가 뺨 좀 쳐 봤지)

본격적인 워크숍 세션을 오전에 구경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조금은 지루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해박함이 넘치는 역사학 교수님의 강연도 있었고 열정적인 젊은 강사들의 다양한 사진을 이용한 강연도 적절히 섞여있었다. 참가자들도 열정이 있는지 수준높은 질문들을 내놓았다.

오전에는 따로 세션을 얻어 어제 갑자기 부탁받은 재단 사업소개를 하기도 했다. 완전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나름 즐거웠다. 땀은 뻘뻘 흘리면서 말이야.

점심도 역시 담백한 것이 맛있었다. ('아주' 맛있었다라고 형용사를 붙이려다 그건 저녁식사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그게 아주 맛있었거든.) 소고기를 안먹는 힌두교도와 돼지고기를 안먹는 무슬림을 배려해 인도네시아의 공식 석상에 나오는 음식은 주로 닭고기인 모양이다. 닭고기 하나만 가지고도 어젯밤엔 크리스피 치킨 오늘 점심엔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매콤한 국물에 졸인 찜닭이 나왔다. 캬~

오후 일정은 가자마다대학에서 경영학과 교수진을 만나는 일이었다. 차를 타고 조금 나가니 족자카르타식 조글로(djoglo) 지붕의 건물에 들어왔다. 캠퍼스는 상당히 컸다. 과연 교육의 도시라 할 만 함. 필리핀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아테네오대와 비교해 봤을 때 건물 상태나 캠퍼스 시설이 나아 보인다. 인도네시아 과연 아세안의 맹주답군.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였는데 무척이나 유쾌했다. 하기사 뭘 팔러 간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것 저것 조건을 따져서 우리가 지원한다는데 그 쪽도 환영 분위기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시내구경을 했다. 보고싶던 왕궁 앞 북쪽 광장도 들렀다. 족자카르타의 술탄이 사는 왕궁인데 지역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는게 특징이었다. 조선 한양의 사대문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실제로 벽 안에 살던 사람들은 고위관료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게 흥미로웠다. 권력의 중심이 종교에서 정치로 이동했다는 명확한 표시였다.

[왕궁 들어가는 길]

[성벽]

[ 성벽 안 거주지]

왕궁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 광장이 나눠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지나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도 있고. 광장에는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술탄의 지위가 땅으로 떨어진 것인지 가드도 없고 어떠한 의식도 없었고 잔디도 없었다. 그저 동네 앞 공터 수준이었다. 여기서 연례행사 수준으로 종교의식이 열린다고 한다. 사실 광장을 인식,이용하는 사람들의 용도가 이쯤되면 종교'의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돌아오며 발견한 어제 저녁 먹은 그 집]

시내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침대에 떡실신해 한시간 여를 자고 일어나 저녁행사장으로 향했다. 야외 만찬에 참석해 만찬사를 해야했다. 입사 2년도 안되어 축사대독에 사업설명에 만찬사까지 참 별걸 다한다 싶었다. 다행히 잘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어과 학생들의 준비된 공연을 구경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에 공연한 사물놀이는 일종의 기선제압용이 아닐까 한다. 생각보다 수준급인 실력인데다 들썩들썩 어깨춤까지 나는게 아닌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울리는 사물놀이의 음감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더욱 놀랐다. 정말 음악은 바다와 같은 건가.


사물놀이 이후에도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코이카 선생님과 인도네시아 학생이 팀을 이뤄 유치환의 사랑이라는 시를 각각의 언어로 낭송할 때 인도네시아 학생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풋풋한 감수성도 감수성이지만 가슴을 아리게 하는 유치환의 표현들은 번역 후에도 그대로 전달되는 모양이다. 음악 뿐만 아니라 사랑도 바다와 같나봐.


한국 관련 공연에 쓰이는 도구나 옷을 어디서 구하냐고 물으니 한국의 자매대학에서 기증하기도 하고 한복같은 경우는 스스로 만든다고 말한다. 한류가 깊숙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가자마다대 한국어과 경쟁율이 20대 1을 넘어선다고 한다.

그 밖에도 동방신기 노래에 맞춘 춤 공연, 부채춤 공연, 한국노래 부르기 공연 등 한국문화에 관한 공연들이 펼쳐졌다. 학생들의 열의와 실력도 대단했고 이를 조직화해낸 가자마다대 한국학센터도 능숙했다. 조직력과 열기에 박수를.


만찬때 초청받은 코이카 봉사단원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진정한 민간 외교사절은 저런 분들이 아닌가 싶었다. 재단이 만날 지원금을 줘도 한국정부가 하는 일인지 티가 안나는 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표현하는 것의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역시 사람이 가서 눈빛을 맞춰줘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나 보다. 무... 물론 우리 재단 지원의 잠재적 파급효과도 무시 못하지만 말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왔다.
어느새 족자에서 마지막 밤이다. (딱 두 밤 잤다 -.-;) 막밤을 기념하기 위해 눈여겨 봐둔 길건너 편의점에서 제일 현지식으로 보이는 라면과 빈땅 맥주를 구입했다. 

[족자에서 가장 잘한짓, 빈땅 맥주 마신 것]

[맛있는 미고렝 라면]

[구성물]

[이래 뵈도 맛있었어]

빈땅맥주는 라면이랑 참 잘어울렸다. 크게 쓰지 않으면서 맥주 본맛을 잃지 않아 음식에 반주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맥주였다. 라면은 안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예상대로 면발은 얇고 국물에 무언가를 우려낸 맛이 스며들어 맵지도 않고 얼큰함을 선사했다. 우려낸 맛을 인스탄트 누들에 살린 것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어졌다. 다만 환경 호르몬이 젓가락을 통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스티로폼 및 플라스틱 용기는 개선바란다. 우리 율이가 생겼기에 망정이지 총각이었으면 안먹을 뻔 했음.


마지막 밤은 여느때와 그랬듯이 채널뉴스아시아와 함께 했다. 외로운 밤의 수다쟁이 친구 채널뉴스아시아는 볼 때마다 느끼지만 그 내용이 다분히 자극적, 선정적이다. 뉴스채널의 핸디캡을 극복하고픈 처절한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고 싱가포르 주변국가의 위험성을 부각시켜 내치의 안정을 기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고. 예를 들어 오늘 뉴스에는 스리랑카 코끼리 탈출사건, 중국에서 벌어진 뺑소니에 이은 살인사건, 사람을 후드에 얹고 달리는 자동차 해외토픽, 그리고 인도네시아 소 학대 동영상 등이 여과없이 보여졌다. 거 참 뉴스가 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화끈해 보인다.

물론 재미있는 구성도 보인다. 매버릭, 택시 인 아시아, 외국인 하나 싱가포르인 하나 출연시켜놓고 토론하는 baring 어쩌고 저쩌고 하는 프로그램은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아시아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커버리지가 많아 시각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이름답게 정말 아시아가 무대인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아시아 전체를 자국민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싱가포르가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자체 브랜딩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뜬금없이 아시아의 소울(아니 대체 언제부터!)이니 뭐니 하며 전혀 공감을 주지 않는 표어만 채택한 서울과는 또 다른 모습. 오늘도 그런 생각하며 마지막 밤이 지나가는데, 마침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덧글

  • Space Cat 2011/07/09 02:50 # 답글

    가본 적 없고 잘 모르는 고장의 이야기는 늘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특히 관광객의 눈이 아닌 현지의 일상 이야기라서 더 재밌습니다. :)
  • 뭉군 2011/07/11 22:37 #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 pinn 2011/07/11 00:02 # 답글

    제일 현지식인 라면은 인도미죠! 그리운 족자.
  • 뭉군 2011/07/11 22:37 # 답글

    아 pinn님께 좀 물어보고 갈 걸 그랬어요 흑
  • 닉네임 2012/03/21 13:42 # 삭제 답글

    재밌게 읽고있네 율이아빠
댓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


애드센스1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