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Holy Man by 뭉군



얼마 전부터 회사로 날아오는 대학들의 뉴스레터나 면담때 받은 브로셔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나마 동남아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작은 것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따분할 것 같았던 홍보물들이 의외로 재미난 구석이 있다.

오늘은 태국의 왕립대학교인 송클라대(Prince of Songkla University)의 팜플릿을 읽어보자.


송클라대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송클라 왕자(1891-1921)'의 이름을 딴 학교다. 팜플릿 설명에 의하면 현 국왕인 Bhumibol Adulyadej 국왕이 그의 아버지인 Mahidol of Songkla를 기리며 이름을 부여했다고 전해진다.

[송클라 왕자]

송클라 왕자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현 국왕의 아버지는 왕위에는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태국 왕조에 대한 재미난 글을 본 것 같은데 가물가물. 혹시 블로그를 들르시는 분들, 추천을 부탁드려요). 대신 오랜 유학생활로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이를 태국에 퍼뜨리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로 팜플릿은 그를 묘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송클라 왕자를 "태국 근대의학과 공중위생의 아버지(The Father of Modern Medince and Public Health in Thailand)" 라고 설명하는 부분이다. 왜 그는 근대의학과 공중위생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인가? 물론 주요한 이유는 그가 오랜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을 바탕으로 태국에 돌아와 방콕과 치앙마이 등지의 병원에서 일하면서 "왕자 의사"라는 말을 회자시킬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의술을 펼쳤다는 말은 그냥 단순히 의사로 활동했다는 말 이상이다. 송클라 왕자가 근대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당시 태국엔 서양의학기술이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를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태국 사람들에게는 송클라 왕자의 처방이 진흙을 양쪽 눈에 붙이니 눈이 떠졌다는 예수님 식의 마술처럼 비춰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송클라 왕자의 비범함은 태국 역사에서 자주 등장한 푸미분(Phumibun)의 전형으로 보여진다. 푸미분은 '신성한 사람(Holy man)'이라는 뜻으로 19-20세기초 태국에서 반제국주의운동나 농민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들은 주술이나 매직과 같은 방법을 이용해 주로 잃을 것 없는 하층민들을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푸미분 운동은 이들의 세력 확대를 경계한 당시 왕권에 의해 신속히 진압당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차용해야 하는 법. 푸미분 운동이 사람들을 휘어잡는 방식을 목격한 태국의 시암왕조는 이를 받아들이며 국왕을 푸미분으로 칭하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국가는 조직적으로 신성한 국왕의 힘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주입할 수 있게된 것이다. [1]

현 국왕인 부미볼 왕이 즉위할 무렵 왕권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던 세력들은 주저없이 왕과 왕의 아버지에 대한 푸미분화 작업에 나섰고 아버지 송클라 왕자의 직업이 바로 이 부자를 신성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태국의 푸미분 캐릭터는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출현했다.

필리핀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호세 리잘(Jose Rizal,1861-1896)이 의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그 '신성한 사람' 신드롬이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케 한다. 스페인 식민통치가 거의 끝을 보일 무렵 태어난 리잘은 필리핀에 있을 무렵부터 그곳에 진출한 카톨릭 교회의 도미니칸 수도회와 예수회 종파가 세운 교육기관에서 당시 가능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인재였다.

[호세 리잘]

리잘의 인생은 종종 예수의 그것과 자주 비견된다. 그의 10대 시절은 온갖 비범한 이야기들로 넘친다. 지나가는 아픈 농부의 건강을 낫게 해주었다거나 사람들에게 '생기'와 '편안함'을 불어넣었다는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게다가 서른 여섯의 짧은 생의 마지막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스페인 식민세력에게 붙잡혀 총살당했으니 카톨릭이 거의 국교 수준인 필리핀에서 리잘을 필리핀인 예수처럼 인식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리잘을 숭배하는 컬트조직들이 필리핀에서 아직까지 활동중이라고 한다)


[총살당하는 리잘]


이러한 리잘의 숱한 신화 뒤에는 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안과학을 공부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과학 공부를 끝내고 필리핀에 돌아와 리잘은 몇차례 안과 시술을 했었는데 그 시술인즉, 간단한 시술이나 투약만으로 사람들을 '개안'시키는 그 당시로써는 '마술'이었다. 그의 이런 활동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예수의 인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필리핀인들 사이에서 리잘은 또 한명의 예수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2]


이상 살펴본 태국과 필리핀의 사례는 동남아를 지배해온 Holy man 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오랜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해온 통치자의 개념이었음을 보여준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신성한 통치자들에게 열광하는 동남아의 정신적 조건은 최근 이곳을 강타하고 있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등장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돈을 이용해 무상 의료를 가능케 하고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 통치자들의 매력(마력)에 폭 빠져드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Holy man 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 Tarling, Nicholas(ed.), The Cambridge History of Southeast Asia. Vol.2, Part 1,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212쪽.

[2] Ileto, Reynaldo C. Filipinos and Their Revolution: Event, Discourse, and Historiography. Ateneo de Manila University Press, 1999.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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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믿음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리핀 역사에서 자주 출현하는 '순교자'들이다. 필리핀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통하는 호세 리잘(Jose Rizal)은 필리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스페인군에 붙잡혀 총살당했다. 그 밖에 필리핀에서 국가적 영웅(National Hero)으로 추앙받는 많은 사람들(And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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