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성 파워 by 뭉군



지난 10월 12일,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곳에서 2010 세계 성평등 지수(Gender Gap Index)를 발표했다. 어떻게 각 나라들의 남녀 평등 정도를 계량화시켜 숫자로 나타낼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변수들이 얼마나 평등이라는 개념을 잘 반영하는지 여부는 사회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북유럽 국가가 1-4위를 휩쓸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성평등지수를 조사하면 대부분 선두권을 형성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남녀평등에 다가선 국가들이다. 이 지수의 신뢰성과 관련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 하나. 수년 전에 노르웨이에서 잠깐 공부하면서 용돈을 벌어보고자 노동일을 하루 했었더랬다. 체육관에 설치된 행사 장비들을 치우는 일이었는데 주된 일이 무거운 철재를 나르는 사실상 노가다였다. 현장에 처음 도착해서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아이고 노르웨이 여성이 두 명이나 끼어있었다. 그때 받은 충격이란 거 참 말로 못하겠다. 일을 진두지휘하는 현장소장도 아무렇지 않게 여성 노동자들에게 일을 배분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각자의 일을 시작했건만 나는 여전히 생경한 문화충격에 얼얼해 하며 일을 했다. 남녀가 비슷한 체격을 갖고 태어나는 환경적인 요인이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제도나 문화적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부럽고 낯설었다. 정작 위의 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변수로 남성과 여성의 골격 비율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겠지만 2010 지수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노르웨이를 보니 얼마간 신뢰성이 있는 지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몇 위일까? 134개국 중 104위다. 거의 최하위권이라는 말인데 그나마 2009년 115위에서 열한 계단 상승한 나름 상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00위권을 서성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왜 바닥을 계속 닦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많이 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지 말고 다른 나라들을 한 번 살펴보자. 언론에서 대한민국과 비교하며 등장하는 주요 선진국이나 경쟁 아시아 국가말고 우리가 한 수 아래라고 여기는 동남아 국가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국가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한국

순위

9

56

57

72

87

97

98

104




전체 134개국 중 7개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조사대상이었는데 이들 모두 대한민국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이 너무 바닥권이라 사실 놀랄 일은 아니지만). 특히 9위를 차지한 필리핀의 놀라운 선전(2006년 조사 시작 이래 줄곧 6~9위를 차지해왔다) 아래로 싱가포르 56위, 말레이시아 98위까지 위아래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분포된 탓에 동남아의 성평등이 진전된 공통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지 모른다. 지역적, 환경적 영향이 이들의 성평등 지수와 별 관련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적어도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동남아인들은 남녀관계를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상호보완적이며 조화로운 관계"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기반에는 경제적 시장에서의 주도권이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있었던 동남아 역사가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들이 친여성적인 것들이었다는 말이다. 농사일을 넘어 조상숭배와 같은 종교활동까지 여성들이 주도하던 이 지역에 근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남성들이 진출하기 쉬운 제조업 분야보다는 여성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서비스업이 발달함에 따라 오늘날까지 여성들의 지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아, 할 일이 없다 - 베트남 호치민에서 만난 청년들]


특히 필리핀의 선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녀 가리지 않고 교육을 시켰던 이 나라의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했던 제도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지만 최근 필리핀 경제의 큰 축으로 성장한 아웃소싱 산업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는 점이 바로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친여성적인 산업구조의 하나다 (콜센터와 같은 대표적인 아웃소싱산업은 부드럽고 세련된 강점을 가진 여성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게다가 필리핀 경제를 수십년 째 떠받치는 해외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동남아 여성파워의 근대적 토대가 상당부분 산업구조와 관련있음을 보여준다. '메이드'라 불리우는 가정부 생활을 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필리핀 여성들은 "unsung hero"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필리핀 정부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이들인데 정작 이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가정부로 일하는 이들 대부분 필리핀 본토에 자신의 송금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부모님, 남편,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이 어찌 강해지지 않으리.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다른 국가의 중산층 여성의 지위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는 것이다.*** 가정부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세계 곳곳에 진출하면서 이들 수혜국가의 중산층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인력 수출국의 여성들에 감사할 일이 많아 보인다.

결국 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기록한 상대적으로 높은 성평등지수는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쩌면 더 과소평가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사실 우리가 요새 핏줄 세우며 외치는 국격과 같은 브랜드는 한나라의 경제력과 관련성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경제력에 비해 낮은 국격을 높이겠다고 대대적인 계몽사업을 펼치는게 아닌가. 국격은 남녀평등과 같은 소소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력만으로 이룰 수도 없는 것이고 그 나라의 문화와 제도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야 드러나는, 만들기 어려운 혼합물이다. 경제력=국격이 아니라면 우리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하는 부끄러운 태도를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 Reid, Anthony.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ume One: The Lands below the Winds. Yale University Press, 1990.

신윤환. 동남아문화 산책, 창비, 2008

Andaya, Barbara Watson. Other Pasts: Women, Gender and History in Early Modern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Center for South Asian, 2001.

**신윤환. 동남아문화 산책,p115, 창비, 2008

***Liz Gooch, “A Path to Financial Equality in Malaysia,”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26, 2010, sec. Business / Global Business, http://www.nytimes.com/2010/09/27/business/global/27islamic.html?_r=1&ref=asia.






덧글

  • 별떵이 2010/10/16 21:39 # 삭제 답글

    사회진출이 많다고 해서 여성들의 인격이나 권리가 높아진 것은
    아니겠죠? 남의 나라 가정부나 간병인, 유모 등의 직업이 늘었다고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보다 월등히(9등과 104등의 차이)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 뭉군 2010/10/18 22:27 # 답글

    제가 남녀평등사회들의 경제적 토대들에 너무 치우쳐 설명했던 모양이군요. 제 한계입니다 ;; 설마 치밀한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진출 하나로 평등지수를 산출했을리가요. 여성의 사회진출 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 건강, 정치적 권한부여, 문맹률,중등 및 고등기관 입학률 등을 모두 따집니다. 그리고 제가 든 필리핀의 예에서 포인트는 '남의 나라 가정부로 진출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타 가족들이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적 의존은 정신적 의존 내지 예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한 것이지요.
  • 박혜연 2010/10/22 00:39 # 삭제 답글

    솔직히 동남아여성들이 우리나라여성보다 성평등지수가 높다는 이유는 잘아시다시피 근대화이전부터 모든 힘든일을 여성이 도맡아시피 했기때문에 그래서 우리보다 평등한나라가 된겁니다! 필리핀이 아시아권에서는 성평등지수 1위며 전세계에서는 9위를 차지한것도 대단한거잖아요?
  • 2010/11/17 14: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yunisha 2011/05/12 21:32 # 삭제 답글

    아, 동남아시아 여성의 지위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는데 너무나도 좋은 자료가 많이 있어서 많이 배우고 참조하고 갑니다.
    저는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지금 동남아사회 수업을 듣는데 마지막 페이퍼 주제로 동남아 여성의 지위에 대해 쓰려고하거든요~
    궁금한 것이 동남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하는데 왜 수많은 동남아 여성들이 human trafficking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에 대해 써보려고 하거든요~ 아무튼 정말 좋은 불로그 정보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사해 염치를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꾸벅~복 받으실거에요.
  • 뭉군 2011/05/14 10:37 #

    저도 그 부분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강함과 육체적인 강함이 달라서 그런거 아닐까요. 님도 복받는 학문 하세요 :)
  • 박혜연 2011/11/09 18:29 # 삭제 답글

    그리고 필리핀의 여성공무원비율이 무려 58%이상이나 될정도로 여성직원들이 많아요!
  • 박혜연 2012/12/21 17:07 # 삭제 답글

    필리핀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성평등지수가 높은이유가 대다수 필리핀남성들은 거의 일도안하고 도박에 마약에 술먹는거에 혹은 여자들이랑 성관계나하며 씨뿌리는일에만 밥먹듯이했고 그나마 일하는 필리핀남성들은 대부분 중상류층내지 상류층인사들이었거든요? 더군다나 필리핀가정부비율이 전세계 후진국 여성가정부들가운데 무려 80%를 넘을정도로 필리핀여성들의 억척스러움이 대단하다는걸 느낄정도죠!
  • 김준태 2013/06/02 18:49 # 삭제 답글

    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물론 보고서에서는 사회적인 상황이나 오히려 남자가 역차별 받는 경우 같은 것은 알기 힘들거 같지만...!

    정말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성차별 문제에 대해 경제적 지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조금 애매한 감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갑니다^^
  • 내알려주지 2014/12/05 03:48 # 삭제 답글

    1~4위까지는 논란여지가 없는 양성평등한 사회. 그만큼 여성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독립심이 강하지. 이렇게 되려면 여자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 되는거야
    그쪽 문화는 first lady,여성에 대한 매너 이런거 하면 오히려 화를 낼정도지
    그리고 5위 뉴질랜드. 우리나라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이하게 여성부가 있는 나라
    여긴 양성평등이라기 보다 오히려 남자를 차별하는 곳이지. 여성들이 억척스러워서
    꼴페미들이 득실거려, 판검사도 여자가 상당수가 이혼하면 위자료 여자로 다넘어가
    이래서 좋은남자들이 자국을 다 떠났지,앞으로 우리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그런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리핀에 대해서 얘기해주마. 저긴 전통적으로 여자만 교육시켜
    나라수장 또한 여자고, 국가발전의 근간이 여성인 여성중심적인 사회야
    놀러가보면 알겠지만, 길거리 남자들은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놀고먹는 사람이 대부분
    그래서인지, 그들은 세번이나 걸친 긴 식민지역사 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배했던 국가를 반기지.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애국심을 찾아보기 힘들어. 국가가 어떻게되든 가족이 중요하지
    그만큼 남자들이 파워가 없고 자존심이 없는 국가야
    자, 우리나라 앞으로 양성평등을 위해 갈길이 먼건 맞아. 그런데 상위권 국가들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라는거지. 우리의식부터 바꿔나가야해
  • ㅇㅇ 2017/04/01 23:15 # 삭제 답글

    풉 ㅋㅋㅋㅋ 그래서 필리핀이나 북유럽이 강대국임?
  • ㄲㄲ 2017/05/16 13:33 # 삭제 답글

    ㅇㅇ/ 빙신아 강대국이란 말이 어디 나오냐...경제력=국격의 공식을 깨고 싶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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