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엔 아직도 재개발이 안된 60년대 식의 아파트가 있다. 주공아파트 개념인 초창기 HDB가 그것이다. 6개월 정도를 그런 아파트에서 산 적이 있었다. 상당히 앙상한 느낌이다. 시멘트를 발라 벽돌을 얹고 그 위에 페인트를 바른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벽면하고 나무로 된 문이 이런 집들의 특징이다. 처음엔 그럭저럭 사는게 괜찮았는데 어느날 난 내 침대 시트를 들추다가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소위 bedbug 이라 불리는 놈들이 내 침대 시트 아랫면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침대벌레, 이들은 주로 사람 피를 빨아먹으면서 사는 기생충들이다. 어쩐지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가렵고 빨갛게 부풀어 오른 것이 이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놈들 박멸하기가 아주 힘들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아무것도 먹지않고 꽤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어서 더욱 박멸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평소엔 침대 시트 아랫쪽이나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살다가 불이 꺼지면 활동하기 시작하는 밤손님 되겠다.
어쨌든 이놈들 때문에 치를 좀 떨다가 집을 옮겼다. 옮기고 나서 내 가방이며 뭣이며 다 뜨거운 물로 담궜더만 이사한 집까지는 따라오지 않았다.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
이야기가 샜는데 본래 하려는 이야기는 베드버그가 아니라 HDB의 엘레베이터에 관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영화인 <싱가포르 드리밍>에는 줄로 사회적으로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전형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능력있는 아내에 비해 초라한 삶을 살아가는 한 40대 아저씨가 나온다. 그런 그가 자괴감을 못 이기고 엘레베이터에서 오줌을 갈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전혀 픽션이 아닌 것이 최근까지 싱가포르는 엘레베이터에서 남몰래 방뇨하는 사례가 횡행했다. 이것이 큰 사회문제(?)로 비화돼 정부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일부 범법자들을 색출해 신분을 공개할 정도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엘레베이터만큼 개인적은 공간은 없을 듯 하다. 날씨가 더운 탓에 집집마다 창문을 열고 대문도 연 채, 창살문만 닫고 지낸다는 점을 보면 집안도 그리 사적인 공간으로 보이진 않는다. 엘레베이터는 일단 문만 닫히면 나만 홀로 있게 된다. 게다가 사진의 엘레베이터처럼 오래된 것들은 CCTV도 없다. 이렇게 오래된 엘레베이터에 "오줌 탐지기Urine Detection Device"라는 것이 갖춰져 있다는 전투적 문구를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과연 어떤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이런 누추한 엘레베이터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나저나 베드버그나 오줌탐지기가 장착된 엘레베이터나 점점 보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싱가포르에 그나마 존재하던 초창기 HDB가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로 제대로 한 방 맞은 경제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그러지 않아도 공사판인 이 섬이 삽질로 가득하게 생겼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