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Shooting an Elephant (코끼리를 쏘다). by 갑시다



Orwell, George.1950. Shooting an Elephant and Other Essays. London: Secker &Warburg. 

 


 

 
조지 오웰이 영국 식민지인 버마에 제국경찰로 지원한 것은 1922년이었다. 그는 버마에서 몇몇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들이 소설과 자잘한 에세이인 “Burmese Days”, “A Hanging”, “Shooting an Elephant” 등이었다. 반제국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오웰은 왜 하필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지원했을까? 혹자1)는 이런 그의 행동을 두고 “무의식적인 형태의 반항적 스파이 기질”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는데 글쎄 그런 평가는 오웰이 머리가 큰 후에 쓴 작품만 읽고 그의 어린 시절의 선택의 배경을 추론한 것이니 그리 확 구미에 와닿는 평가는 아니고, 그냥 어린애들이 뭘 모를 때 한 선택이 아닐까 한다. 오웰 나이가 스무살도 안되었을 그 무렵, 옥스브릿지 어디에도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우리로 치면 '에이 군대나 가자'는 심정으로 갔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오웰은 버마에 가서 이런 저런 작품을 남긴다. 그 중 코끼리 총격사건은 꽤나 유명한 단편 에세이다. 오웰이 식민지에서 경찰생활을 하면서 제국주의에 질리고 버마인들의 비밀스런 형태의 반항과 비웃음에 넌더리가 날 무렵 오랜만에 그에게 코끼리 난동사건으로 인한 출동명령이 떨어진다. 오웰은 수천명의 구경꾼들과 코끼리의 흔적을 따라 가다 결국 난동을 멈추고 유유히 휴식을 취하던 그 코끼리와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단지 겁을 주기 위해 들고간 소총으로 코끼리를 사살해야 할 것 같은 쇳덩이처럼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만다. 수천명의 피지배자들이 숨죽이며 침을 꼴까닥 삼키면서 총을 든 한사람의 백인을 치켜보고 있다면 그 백인은 반드시 총을 쏴서 코끼리가아니라 공룡이라도 잡아쳐서 지배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부담스런 경험은 오웰로 하여금 제국주의의 앙상한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오로지 발달된 무기로만 무장한 소수의 백인 지배자들은 사실은 다수의 피지배자인 토착민들의 기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인형”에 지나지 않다는 그의 깨달음은 제국주의가 떠드는 담론들에 대한 허점이자 허무함을 그대로 집어내고 있다. 자신들을 고상한 모던함의 세례를 받은 교양인들이라 여기던 백인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야만적으로 총부리를 겨누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침략을 가할 때는 무언가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을터, 이유인즉, 아직 전통에 머무르는 버마인들을 개화시키기 위해 왔다는 것이 되겠다. 놀랍게도 빤히 보이는 그러한 지배의 정당화가 그들이 지배한 곳의 “노오란 피부의” 사람들 사이에서 잘 먹힌다. 사람은 싫어해도 죄는 미워하지 말랬나, 어쨌든 백인은 지독히 싫어하지만 모던함은 버마인들에게도 한줄기 빛으로 받아들여졌다. 문명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말위에서 총을 든 백인의 모습은 토착민들에게 마치 “마술을 행하는 요술쟁이”처럼 받아들여지게 되고 이러한 모던함에 대한 토착민들의 충만한 기대를 받아 지배자백인은 다시 지배자로써 모던함의 기치를 걸고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그것이 오웰이 말하는 제국주의의 “속 빈 허무함”이었다. 제국주의가 내세운 모던함은 결국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멀쩡한 코끼리만 죽이고 만 것이다. 그 백해무익한 모던함이라는 것, 그 위험한 가치에 대한 오웰의 통찰이 이 짧은 에세이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웰의 대부분의 글쓰기가 그렇듯이 그의 날카로운 통찰은 대부분 그가 발을 들여놓은 현실에 근거하고 있어서 나 같은 오빠(오웰 빠돌이)들은 혼란스럽다. 지배자의 모습으로 출현하는 이 에세이에서 오웰이 겨누고자 했던 것은 단선적 가치에 사로잡힌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였지만 동시에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속마음이야 어찌되었든 버마에서 경찰로 복무했고, 또 곳곳에서 보이는 오웰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들 (가령 버마인들의 우왕좌왕함에 대한 오웰 특유의 구분짓기식 정의라든가, 자신이 연민을 비춘 코끼리에 대한 버마인들의 고기에 대한 탐욕을 그린 부분이라든가…) 은 도대체 오웰은 이중인격자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게 한다. 모던함의 포악함을 비판하던 그가 어째 모던함에 사로잡힌 편견적 묘사를 하는 것인가? 그가 이중인격자가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이 오빠의 바램은 그가 르뽀형식의 탐사저널리즘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지나친 감정이입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으로 흘러간다 (곧 죽어도 내 아이콘의 위상을 추락시켜서는 안된다).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묘사한 다음 곧이어 자신이 만든 상황의 행위자인 자신을 포함시켜 통렬한 비판을 시도하는 일은 분석력과 감성을 지닌 저널리스트가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일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담고자 하는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 뼛속까지 그 상황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머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글을 끄적이다가 문득 정신차리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시도하는 것, 그것이 오웰이 가진 저널리스트적 기질이다.  
 
 
1) Wood, James .2009. “A Fine Rage – Geroge Orwell’s revolutions.”. The New Yorker Apr 13, 2009,p57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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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던진도우넛 2015/05/21 00:06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던진도우넛 2015/05/21 00:06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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