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글루스 by 뭉군

안녕 이글루스. 난 워드프레스로 간다.

http://lampz.wordpress.com

워드프레스도 맘에 안들어서 네이버 품에 안겼다.


말콤 글래드웰의 생각. by 뭉군

Man and Superman (The New Yorker)


아직도 가끔 뉴요커를 뒤적거리는 이유는 말콤 글래드웰의 글을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다. 다른 여느 잡지들을 쫓아 페이월을 세운 뉴요커의 글들은 일정기간에만 특정 이슈가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자주 들러줘야 글래드웰의 글을 맞이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글래드웰 글들의 상당수는 비범한 사람들의 비결을 연구한 내용이 많았고 오늘 발견한  "Man and Superman" 역시 비슷한 주제였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가진 선천적인 조건을 짚은 글이었다.

"What we are watching when we watch élite sports, then, is a contest among wildly disparate groups of people, who approach the starting line with an uneven set of genetic endowments and natural advantages." 

글 전반부의 핵심은 환경과 유전자라는 요인이 신체조건이 뛰어난 운동선수를 배출하고 이들이 역사에 남는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해 왔다는 것이다.  

그걸로 끝났으면 단순한 가십 기사로 끝났을 글이 재미있는 물음을 던지면서 새로운 전환을 꾀한다. 

"He wanted to match, through his own efforts, what some very lucky people already do naturally and legally. Before we condemn him, though, shouldn’t we have to come up with a good reason that one man is allowed to have lots of red blood cells and another man is not?"

물음은 단순하다. 남들보다 적혈구 수가 많아서, 즉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 월등한 운동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와의 경쟁은 허용하면서, 신체적 조건을 월등하게 만들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일반 선수들은 왜 허용하지 않는 것인가?

싸이클링에서 불거졌던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파동을 예로 들며 글래드웰은 이들이 행한 일은 자신의 피를 스스로에게 주입해서 산소흡입과 파워향상에 도움을 주는 적혈구 생산을 활발하게 했을 뿐이라 말한다. 적혈구가 원래 많은 사람과 이를 일부러 증가시킨 사람 간의 경쟁은 부도덕한 일인 것인가?

글래드웰이 선택한 글의 마무리는 현대 스포츠가 가진 비젼이다. 

"It is a vision of sports in which the object of competition is to use science, intelligence, and sheer will to conquer natural difference. 

"스포츠가 내세우는 경쟁의 목적은 과학, 지성, 그리고 자연적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순수한 의지"라는 그의 표현은  여느 스포츠에 적용해도 그럴 듯한 발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반전인가 괴상한 논리일 뿐일까?
 
"Hamilton and Armstrong may simply be athletes who regard this kind of achievement as worthier than the gold medals of a man with the dumb luck to be born with a random genetic mutation."

약물 파동으로 싸이클계에서 철저하게 비참해진 해밀턴과 암스트롱의 경우 이들이야 말로 스포츠의 비전을 실천코자 하는 운동선수였"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말콤 글래드웰의 가장 최근 생각이었다. 

[태국] 스네일 크림 by 뭉군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이봐 한국 친구, 이번에 내가 화장품 하나를 들여와서 한국 수입제품으로 홍보하려는데 말이야

김똘똘: 응 한국말이나 국기를 겉 포장에 삽입하면 판매량 증진에 도움이 될 거야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그런데 스네인 크림을 한국어로 뭐라 그래? 한국말도 좀 넣을려고

김똘똘: 응 이름이 뭐라고?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스네인 말이야, 땅에 붙어 기어다니는 그거.

김똘똘: 아, "뱀 크림"이라고 하면 돼. 근데 그게 진짜 한국에서 인기래?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물론이지 내가 봤다니까!


마늘밭 by 뭉군


숲길에는 조랑말 크기의 고라니가 먹을 것을 찾으러 마실 나와 있었다. 우리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귀여운 모습에 신이 나서 아버님께 말씀 드리니 '그 쳐죽일 놈'이라고 되받으시는 바람에 괜시리 머쓱해졌다. 일년 내내 땀흘려 일군 콩밭의 콩을 그 쳐죽일 놈들이 싹 먹어치웠다고. #쳐죽일놈

장마가 시작되었다던 한반도는 쨍쨍했다. 해가 하늘 높이 치솟자 그나마 군데군데 드리웠었던 그늘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잠시 몸을 풀고 오늘의 공략지 마늘밭으로 향했다. 근사한 오찬을 즐기기 전에 마늘밭 두 고랑을 헤치우는게 목표였다. #기상청기상

허리춤까지 올라온 잡초들이 가득한 밭이었다. 위태롭게 싹을 올려낸 마늘 줄기들은 손목 굵기의 잡풀들에 포위된 상태였다. 아버님은 지난 한 달 동안 신경쓰지 못하신 결과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마늘을 뽑아내기 전에 이 끈질긴 놈들을 먼저 제거해야 했다. #잡초의운명

잡초는 난초처럼 야리야리한 수준의 이파리들이 아니었다. 굴곡진 인생을 왜 잡초같다고 일컫는지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풀이라고는 하지만 줄기는 지름이 5-6 센티에 이를만큼 우둑했고 그 뿌리는 흙 속에 단디 심지를 두고 있었다. 아버님 표현에 의하면 마늘에게 갈 양분을 중간에서 잡초가 쳐빨아 먹었기 때문이란다. 두 손으로 줄기를 움켜잡고 온몸을 이용해 끌어올리자 주변의 흙이 요동치며 뿌리를 토해낸다. #잡초같은삶

간신히 잡초를 밭에서 몰아내니 낚시의 찌처럼 땅위로 불쑥 솟아오른 마늘줄기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이제 수확의 기쁨만 따먹으면 되는가 싶어 가볍게 잡아올리니 줄기만 툭 끊어지며 정작 흙속의 마늘알은 따라 올라오지 않는다. 수확시기가 조금 늦어 알들이 흙에 박혀버린 탓이란다. 결국 삽질이 필요했다. 한사람은 마늘 주위를 삽으로 열심히 들어내고 다른 사람이 헐거워진 흙에서 마늘줄기와 알을 고스란히 구조했다. 우리의 작업으로 빛을 본 알들은 평소에 접하던 마늘보다 크기가 작았고 이에 아버님은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하셨다. 삽질을 하다가 땅속의 멀쩡한 마늘알들을 삽날로 반토막낸 일들은 말씀 안드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농부의마음

간신히 두고랑을 마치고 세시가 되서야 늦은 점심을 해치웠다. 반나절 동안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은 알코올로 채워졌고 갑작스런 대낮 음주에 놀란 신체는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농부들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리듬을 유지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귀농체험


[싱가포르] 연기로 뒤덮인 나라들 by 뭉군

연기는 항상 매케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항상 연기 앞에서 긴장하는 눈치였다. 연기를 통해 간단한 뜻을 전했던 봉화도 대개 적의 출현이나 전쟁과 같이 긴박한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이는 연기가 인간에게 내보이는 전형적인 이미지와 일치한다. 몇해 전 연평도가 포격당했을 때 섬에서 피어오른 연기에 진하게 뽀샵질한 그 언론사의 분탕질도 그 전형적인 이미지의 극대화를 노렸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인 연기란 없다]
 

공기가 바짝 말라버린 요즘 같은 시기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언론을 뒤덮는 연무(Haze) 사진은 그렇게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온통 희뿌옇게 뒤덮여 항상 보던 풍경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경험은, 그것이 한순간의 마술이 아니라면, 내심 불안한 경험일 수 밖에 없다. 


[사진출처: Shawn Ho]

[사진출처: Shawn Ho]

실제로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연무는 사람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올해 발생한 연무의 경우 PSI(Pollutant Standards Index) 수치가 지난 6월 21에 401을 찍었는데, 통상적으로 100-200사이가 건강에 유해하다고 (unhealthy) 일컬어지는 것을 보면 이는 집 바깥으로 나다니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에 다름없다. (물론 실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닐테지만)


[사진출처: The Economist]

엄청난 연기가 이웃한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오는 탓에 거의 모든 독박을 쓰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람들은 예민한 사자의 콧털처럼 곤두서 있는 모양새다. 물론 개중에는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이들도 많았으니 몇몇 작품을 감상해 보자. 


[사진출처: mrbrown.com]

[사진출처: mrbrown.com]

인도네시아는 지난 2002년 아세안에서 주도한 '국경을 넘는 연무 문제에 대한 협약(Agreement on Transboundary Haze Pollution)'을 비준하지 않은 유일한 회원국이긴 하지만, 연무의 주요 요인인 화전 (Slash and Burn) 농법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니 매년 자국민이 불을 지르며 발생하는 매케함을 아주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의지의 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화전농법은 숲과 같은 곳에 나무를 베고 땅에 불을 지름으로써 땅을 개간하기 위해 행해지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경제적 이득이 큰 팜오일(Palm Oil) 플랜테이션의 경작을 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땅에 불을 놓는 것은 여러가지로 인류와 지구에 독이 되는 일인데, 불이 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숲을 없애는데다 숲의 식생이 불에 타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가스도 자동차 배기가스 못지않게 지구 온난화의 공범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린피스(Greenpeace)는 동남아시아에서 연례행사처럼 터지는 연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인도네시아 리아우(Riau)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방화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팜오일 기업의 관심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그린피스의 의도는 그 어떤 성명서보다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자욱한 연기가 태양빛을 가려버릴 때, 사람들은 비로소 빛 한줄기가 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할 것이다. 

[사진출처: 그린피스]

이웃 국가들과 각종 환경단체들로부터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금 불을 지르는 이들이 대부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거대 팜오일 기업이라고 항변한다. 지구화시대에 초국적기업이 활개치는 환경 아래 신음하는 국민국가의 모습을 연출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원했던 희생양 이미지와는 달리 나랏일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정부라는 세계인들의 이미지만 굳힌 듯 하다. 당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은 인도네시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좌절감과 이에 대비된 싱가포르 시스템에 대한 관료들의 확신만 심어준 셈이다. 

무책임한 정부와 함께 환경을 말아먹는 방화범으로 지목되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적의 팜오일 기업들은 변명한다. 대부분의 불은 기업이 소유한 땅 주변의 농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개간하기 위해 불을 질렀고 맹렬한 기세로 번지던 불이 우연히 기업영토에 옮겨붙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와 같이 토탄(peat) 성분이 가득한 토양에 불이 붙으면 인간이 물 따위로 진화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는 한다만은 영악한 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더 읽기] 

1) 이코노미스트의 Banyan Blog 에 등장한 스모그 문제. Haze가 아니라 Smog라 부르니 더 와닿는 느낌

2) 백번의 성명보다 확실했던 그린피스의 방화지 사진들

3) 아직 웃음을 잃지 않은 일부 싱가포르인들

4) 화전 농법이 무엇인지 친절히 알려주는 BBC

5) 인도네시아 르뽀

2013.7.9 업데이트

6) 이코노미스트 반얀 블로그에 올라온 글. 자신들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는 기업들의 말은 옳을 지 모르겠다. 대부분 기업들이 주변의 농부들에게 돈을 주고 기업 소유 땅 근처에 불을 지르도록 했다고. 
http://www.economist.com/blogs/banyan/2013/07/fires-sumatra

7) "이코노미스트가 설명해준다" 블로그에 올라온 왜 동남아에서 연무문제는 풀기 힘든 문제일까를 설명하는 글. 
http://www.economist.com/blogs/economist-explains/2013/07/economist-explains-3?fsrc=scn/tw/te/bl/ee/haze


유홍준이 알려주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뭉군


궁금했다. 어린 시절 투덜대던 나와 형님을 이끌고 전국을 돌며 우리 가족만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행한 부모님이 왜 유홍준의 글에 그토록 빠지셨는지. 우리 오마니는 심지어 그의 사인회에 나를 동반하시어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에 친필 사인을 받기도 하셨으니 단디 빠지셨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유홍준이 쓴 육지편 문화유산 답사기를 거의 모두 읽어 보았지만 여전히 찾아내지 못한 궁금증은 그가 최근 내놓은 제주도 편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옛날보다 머리가 커져 있었고, 무엇보다 의문을 풀어낼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답사지가 제주도라면 꼼꼼하게 읽어볼 개인적인 동기도 충분했기에,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펼쳤다(라고 하면 상투적이다 못해 한물 간 표현일까요, 사실 펼칠 책장도 없는 e-book이었습니다)


책은 흥미롭게 읽혔고 유홍준의 글은 여전히 뭔가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울렁이게 했다. 이 정도면 여행 에세이로서 최고 덕목을 실현한 것 아닌가?

 

[울렁이지 않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자면, 꼭 제주가 아니라도 유홍준의 답사기는 늘 인기였다. 답사지가 갖는 자연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유홍준이 설명해 주는 그곳의 무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꼭 실물로 접하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한때 자가용을 소유한 중산층으로 하여금 설레임에 시동을 걸게 만든 작가, 유홍준의 힘은 어울리지 않는 두가지 - 느슨한 문체와 알게 모르게 풍기는 단정적 권위 - 의 묘한 어울림에 있다.


먼저 느슨하고 수더분한 문체를 말하자면, 그는 교수 시절부터 문화재청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어 가면서 문화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아주 능숙하다. 마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으레 확인하게 되는 여행지와 관련된 블로그 검색글처럼 유홍준의 글은 자칫 돌덩어리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며 숨을 불어넣는다. 그이만큼 돌들의 숨구멍이 어딘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진 또다른 무기는 'OO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담대함이다. 이를 미술사가로서의 전문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독선이라고 해야 할지는 판단 보류하겠다.

 


제주도 편에서도 그는 여전히 용자였다.


"그러면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어디를 가질 것인가? 그것은 무조건 영실이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 - 영실)


담대함이라는 기질에서 흘러넘친 그의 버릇은 "최고" 또는 "명작"에 대한 뚜렷한 인식 내지는 집착이다.


"추사는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를 제작했다" (제주도 서남쪽3-대정 추사 유배지 중)


"당시 제주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최고의 그리고 최초의 제주 민속 인문지리서다" (탐라국 순례3-오현단)


"제주의 옛 돌하르방 47기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고" (원당사에서 불탑사로)


"김지하 시인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제주의 서남쪽 2 - 송악산)


평생을 아름다움만 파냈던 유홍준에게서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이 불편하기는 커녕 배워야 할 지식일 수도 있겠다. 그가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온갖 여행서적에 "Must-see"가 판치는 마당에 그가 이 길고 긴 쇼핑 리스트의 길이를 늘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짧은 표현을 통해 유홍준은 아름다움을 계량화하는데 성공하는 한편 (미학과 필수과목으로 통계학을 지정하라!), 징그럽게 무거운 권위를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 얹어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 책을 파는데 성공했다.


캄보디아 신호등 - 소양인의 희망 by 뭉군

오늘 서울의 태양빛이 텁텁하다. 

32초인지 섭씨 32도인지를 남긴 시엠립의 빨간 신호등을 찍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몇그루 없었던 도시의 나무들도 싱가포르에 비해 어찌 그리 여리여리한지 사정없이 들이닥치는 햇빛을 가려내기엔 우스운 수준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며 찍은 신호등 속 사람은 몸에 열이 많은 한마리 소양인 같아 보였다. 어디 한켠에 몸을 숨기지도 못하고 정자세로 햇빛과 상대하다 벌겋게 익어버린 소양인에 측은한 마음 솟아오를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빨간 신호등 속 소양인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차오르는 이곳 시엠립에서는 차라리 냅다 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근육을 씰룩거리며 달리는 모양새가 간절해 보였다. 제한된 시간안에 열심히 뛰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누가 주입했을까?

그렇게 30여 초를 뛰다가 다시 벌겋게 익은 채 두다리 땅에 붙이고 서있을 운명이라니 이 무슨 깝깝한 쳇바퀴인가 하여 소양인의 눈길을 외면하고 길을 건넌다.


[싱가포르] 모든 것의 자유에 대하여. by 뭉군

#1

1994년, 한 미국인 교수가 경찰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싱가포르를 탈출했다. 말 그대로 탈출이었다. 학교 연구실의 책과 집기를 챙길 틈도 없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크리스토퍼 링글(Christopher Lingle)교수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에 싱가포르 민주주의를 폄하하는 글을 게재했다가 당한 험한 꼴이었다.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는 링글 교수가 쓴 칼럼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법원은 이미 미국으로 날아가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링글 교수에게 싱가포르 사법부에 대한 모욕 등을 이유로 당시 역대 최고인 7,0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때렸다. 


역시 같은 해인 1994년 (그 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리콴유의 심기가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 같은 대학 정치학과의 빌비어 싱(Bilveer Singh) 교수는 인도네시아 신문인 자카르타 포스트(Jakarta Post)에 “Singapore Faces Challenges of Success” 라는 칼럼을 썼다가 역시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호된 맛을 봐야 했다. 문제가 된 내용인즉, 싱가포르 인들 다수가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정부와 일부 세력이 그 과실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즉각 같은 신문에 반박문을 게재해 싱 교수에게 주장의 정확한 근거를 요구했다. 학술논문도 아닌데 수치까지 요구하니 좀 처연하긴 했다만 싱 교수는 곧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싱 교수는 싱가포르국립대에 여전히 재직 중이며 (그 사건 때문이었는지) 아직 부교수에 머물러 있다. 

일련의 소란이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진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여전히 지식인들의 입이 두려운 모양새다. 싱가포르국립대와 최고대학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난양공대(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는 최근 체리안 조지(Cherian George)라는 미디어 분야 교수 한 명을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뜨림으로써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물론 조지 교수는 싱가포르 정치 시스템및 여론에 대해 상당히 거리낌없이 발언하던 사람이었다. 

위의 상황들이 비단 싱가포르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년 전 막스 베버(Max Weber)는 독일의 예를 들며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서 실력 이외의 숱한 요인이 개입한다는 점을 모든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종의 리스크이자 주어진 외적 환경이라 칭하기도 했다. 

#2

오랜 세월 유지해 왔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균열양상은 (늘 커다란 변화가 그랬듯이) 오히려 시민사회로부터 추동되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자신감을 보이는 각종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재보궐 선거 이후 정부가 취하는 국민과의 대화 모드 (Our Singapore Conversation이라고 부른다)를 적극 활용해 여러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싱가포르 대화 홈페이지]

대표적인 사례는 싱가포르 내 인구증가에 대한 국민들의 고조된 불만이다. 올해 초 정부는 인구백서를 발표하며 현재 500여 만명을 넘은 외국인 포함 싱가포르 인구를 2030년까지 69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고 이는 속이 꽉찬 국민들의 분노와 마주해야 했다. 시위를 위해 마련되었지만 한가하기만 했던 Honglim Park같은 공원이 성난 시민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외국인들은 늘고 물가는 오르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한 MRT같은 대중교통 수단에 외국인들과 함께 콩나물 신세가 되자 짜증을 넘어 분노로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집값과 밥값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의 값어치가 가파른 속도로 폭등하고 있으니 위기는 총체적이다. 한 싱가포르 친구는 "싱가포르인들은 이제 웃음을 잃었다"라고 자신들의 상황을 처연하게 묘사했다. 제3자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실제보다 과장을 섞어 묘사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위기감이 심각한 수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주된 관심 - HDB 엘리베이터 업그레이드 작업]

어찌보면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는 정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정부가 정치라는 행위의 범위를 기껏해야 지역의 민원(가령 싱가포르에서 주공아파트 격인 HDB의 엘레베이터를 교체해 달라는 건)을 협의하고 해결하는 정도로 협소화시킨 탓에 인구정책과 교통정책 등의 거시적인 문제를 정하는데 있어 국민의 배제가 당연시 되었고 이에 따라 공공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만한 장치를 두지 못한 것이다. 

싱가포르 시민사회단체로서는 호기임에 분명하다. 예전같았으면 정부가 불도저처럼 밀고 나갔을 일부 공공정책에 치열한 잡음이 들리고 있으니 정부는 물론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한 예로 싱가포르 외곽에 위치한 부낏 브라운(Bukit Brown)이라는 공동묘지를 두고 벌어지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대치상황이 있다. 일종의 자연생태 공원처럼 파헤쳐지지 않은 이 공동묘지가 고속도로 건설 등을 이유로 밀려버릴 위기에 처하자 시민단체들이 이곳을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정부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다. 

#3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대화'다. 앞서 언급한 2012년부터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싱가포르 대화모드(Our Singapore Conversation)가 대표적이다.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 26명이 모여 위원회를 결성하고 미국의 타운홀 미팅처럼 각 지역을 돌며 민심을 수렴해 정책형성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제기한 주제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만여 명이 넘는 국민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대분류를 하자 저렇게 두루뭉술한 그리고 좀 뜬구름 잡는 주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 거대한 스케일의 대화를 통해 국민들이 정책 결정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이 마련되었다. 위기의 시대에 급히 만들어진 대안적 채널조차 정부주도로 만들어져 밑의 목소리가 위로 추어올려진다는 것은 이 '대화'의 효과성 내지는 진정성에 약간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싱가포르 정부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참고)
1. 싱가포르 학문의 자유 침해 사례 모음집


모델 하우스 by 뭉군


얼마 전부터 하우스에 사람보다 파리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강남 불패신화가 저무는 것일까 아님 서울 마지막 노른자위라며 대책없이 올린 분양가가 원인이었을까. 여튼간에 사람이 거주하지도 방문하지도 않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난 안살림을 맡고 있다.
 
롯데캐슬 모델 하우스에 만연한 성스러운 침묵을 깨는 것은 식후 아메리카노 한잔을 움켜쥐고 우연히 발길이 닿아 들른 직장인들 뿐이다. 이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성큼성큼 떨어지지만 가만히 살피자면 발끝이 좌우로 떨리고 있다. 떨리는 발끝을 이끄는 것은 불안한 눈빛이다.
 
내부에 시원하게 쓰여있는 "마감"이 "임박"한 제일 작은 모델인 "23평형 6억9천만원"의 문구가 이 가련한 월급쟁이들을 주눅들게 했을 것이다. 이 치들의 상당한 공통점은 흙묻은 신발을 신은 채 집안에 들어선다는 점이다. 입구에 슬리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건만, 그리고 리셉션에 있는 알바들이 갈아신으셔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도 이미 전시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손쉽게 무너진 저지선 뒤에 버티고 선 것은 나다. 2층 전시장에서 고상해 보이는 원형 뿔테안경을 얹고 앉아 있노라면 올라오는 이들의 값어치를 쉽게 선별할 수 있다.
 
"예약하고 오셨나요?"
 
지극히 일상적인 물음이지만 그냥 들러본 이들의 눈빛은 갈피없이 흔들린다. 대부분의 답은 "이거 예약같은거 해야 하나요?"와 같은 되물음이다. 누구도 솔직하게
 
"내가 이 정도 자금력도 안되는 사람처럼 보이냐"며
 
나에게 발길질하지 않는다. 물론 예약없이도 구경은 가능하다. 이럴 경우 나는 별다른 설명없이 이들 뒤에 그저 조용히 서있으면 된다. 구매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입을 털기엔 내가 너무 나태해졌다.
 
짐짓 들어와 살 것마냥 붙박이장부터 확장형 여부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응대하는 나는 왠지 심드렁하다. 이놈의 하우스에 모델처럼 서있는다고 성사되는 계약건마다 내가 인센티브를 들쳐업는 것도 아닌데 뭘. 난 그저 미스테리 쇼퍼처럼 들이닥치는 강남 사모님들만 선별하면 별일없는 것이다.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챙이 너른 모자를 머리에 얹고 주로 나른한 오후에 출몰한다. 처음에는 이들을 몰라뵈고 부실하게 대접했다가 "이년이 거드름을 어깨에 철심으로 박아놨냐"고 지랄하는 바람에 머리털 좀 날려보낸 이후로는 옷차림으로도 걸러지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예약했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제 물어보고 딱 삼초만 기다리면 된다.  

[싱가포르] 카페 탐방. by 뭉군

싱가포르에 상당히 긴시간을 머무르는 만큼 이번 여행에선 꼭 이런저런 카페를 들러 한량같이 지내보고 싶었다.

카페의 특성상 움직임이 최소화된 공간이라는 점도 내가 그곳을 즐기는 이유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솟는 싱가포르에서는 꼭 숨돌릴 곳이 필요했다. 다만 입안에 먹을 것이 투입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는 아드님은 내 취미활동의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잠시만 걸림돌]

떠나기 전에 여러 종류의 카페를 미리 탐색했다. 싱가포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소위 꼬피띠암(Kopi Tiam)이라 불리우는 공간의 대표격인 동아 스낵바(Tong Ah Eating House)와 킬리니 꼬피띠암 (Killiney Kopitiam) 그리고 시원한 실내에서 나름 향토적인 이름과 맛을 제공하는 굿모닝 난양 카페(Good Morning Nanyang Cafe) 등을 추천받았다. 물론 최근 몇년새 공격적인 모양새를 취하며 싱가포르 거리 풍경에 획일화를 불러오는 여러 체인점(Ya Kun, Toast Box, Coffee & Toast)들도 한번쯤 들러볼 요량이었다.

우선 잊혀진 옛 입맛을 불러올 겸 야쿤에서 카야(Kaya) 토스트를 먹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관광객들로 항상 시끌벅적한 라우빠삿(Lau Pa Sat) 푸드코트가 허름했던 시절 야쿤이라는 찻집이 태동한 곳이 이곳 어느 가게라고 들어 몇번 찾았는데 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혼잡한 곳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라우빠삿]

그래서 또 야쿤 2호점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최근 문을 닫았는지 발견하는데 또 실패하고 결국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체인점을 늘린 결과 어디에서나 보이는 표준형 야쿤 가게로 갔다.
[표준형 야쿤]

가격은 올랐지만 달달한 커피는 그대로였다. 급하게 커피를 들이키면 바닥에 찐득하게 남아있는 연유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커피다. 달작지근한 커피에 함께 먹는 것은 더 달콤한 카야 토스트. 조그마한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싱가포르 여느 카페에나 없어서는 안될 메뉴가 되어버린 존재다. 여기에 가장 기대되는 소프트 보일드 에그(soft-boiled egg)가 있다. 뜨거운 물에 잠깐(몇십초?) 계란을 투하했다가 꺼내면 이도저도 아주 흐물거리는 계란요리가 완성된다.


입맛이 변하는 것인지 처음 싱가포르에서 맛보고는 가장 느끼하다 여기며 싫어했던 이 메뉴가 이번 방문때는 가장 먹고 싶은 메뉴가 되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먹고 싶어 친구에게 부탁해 부어먹는 간장소스를 세병이나 받기도 했는데 처음에 몇번 먹다가 귀찮아서 간장만 썩히고 한동안 못먹었더랬다.

[맛있었지만 좀 짰어]


지금 싱가포르에는 야쿤의 성공에 자극받은 후발업체들이 득시글 거린다. 굳이 야쿤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돌리면 손쉽게 에어컨이 완비된 카페 체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얻어걸린 곳이 토스트박스였다. 굿모닝 난양 카페를 찾으러 두번이나 시도했다가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길에 들려 시원한 마일로와 아이스 커피를 들이켰던 곳이다. 가격은 1.5불로 머리가 기억하는데 양은 엄청났던 것으로 두눈에 기록되어 있다. 원래 물장사 인심이 후한 건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만.

시원한 카페들을 들러보았으니 꼬피띠암의 전통이 살아있는 옛날식 카페에 가보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꼬피(Kopi)는 커피의 말레이 단어고 띠암(Tiam)은 가게(shop)를 뜻하는 호끼안 단어의 조합이니 그 어떤 단어보다 싱가포르의 다문화 뿌리를 드러내는 말이었다. 물론 나의 한갓진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았던 아내였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내 고집을 관철시켜 동아 스낵바(사실 카페라기 보다는 전천후 스낵바 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어느 신문에서는 이곳을 카페가 아닌 Tong Ah Eating House 라고도 부릅디다)로 향했다.


정작 그곳에 도착하자 좀 당황스러웠다. 뾰족한 삼거리의 꼭지점에 위치한 건물 1층에 자리잡은 동아 스낵바는 카페라고 부르기엔 안락함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스무 평이 채 안되어 보이는 실내의 절반 이상은 부엌과 냉장고 등이 차지하고 있었고 홀에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달랑 한개씩 놓여있었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는 스트레이츠 타임즈(Straits Times)와 중국어 신문이 잔뜩 흐트러져 있어 주인장이나 단골 전용석이라는 느낌이 제대로 풍겼다. 결국 (창문이나 문도 없는 곳이었으니 실내외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실내에 손님을 위한 자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테이블과 의자들은 우리로 치면 좁다란 인도 위에 서 있었다. 유모차를 탁자 아래 주차시키니 사람들이 지나갈 통로를 막을 정도로 좁다란 길이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수명을 겨우 유지하는 선풍기와 허름한 차양막이 이들이 동아 스낵바 소유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누추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선풍기가 내뿜는 입김같은 밋밋한 바람마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주문을 받는 이가 없어 실내로 들어가 키친 앞을 서성여도 테타릭(Teh Tarik)을 당기느라 여념이 없는 주인장과 사모는 이른 아침에 찾은 관광객에게 관심도 없는 눈치다. 간신히 주문에 성공해 달달한 커피와 이번엔 약간은 두꺼운 카야 토스트를 맛본다. 야쿤 바삭하게 굽진 않았지만 적당한 두께와 부드러운 빵맛이 카야(kaya)잼과 섞이자 새로운 조합을 이룬다. 덥지만 근사한 맛이었다.


근사한 노천 카페를 기대했건만 그냥 한산한 길거리 가게였던 동아 스낵바에서 나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는 불편함이 일었다. 실제로는 3주 내내 쓰레빠에 반바지로 돌아다녀 지극히 편안한 옷차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갈 마음가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컬들의 생활을 흥미롭게 관찰하되 결코 뛰어들어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하는 것이 참 묘한 경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정말로 돌아와야 하는 날,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칙끈 라이스(난 이들의 Chicken Rice 발음이 귀에 착 감기는 것이 참 좋다)가 유명하다는 맥스웰(Maxwell) 푸드코트로 유모차를 밀었다. 유모차에 오래 앉아 지루해 하는 아들에게 사탕수수 음료를 선사하고 테이블 하나를 잡아 자리에 앉았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명한 닭밥집 앞에 줄서있는 누구도, 그리고 주변 테이블에 앉은 어느 외국인도 나와 아들이 오늘 싱가포르를 떠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오늘밤 내가 떠나도 맛난 칙큰 라이스를 즐길 이들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안녕 칙큰 라이스]

괜시리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달 놀고 먹다가 출근이라니!) 이럴 때일 수록 쓸 데 없는 생각이 번지는 시원스런 카페는 피해야 한다. 사람많은 푸드코트에 그렇게 멍하니 한동안 있었다.



수십 개의 테이블 위에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이 누구의 어깨에나 지워진 그 와중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게 제일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행이 끝나가는 마당에 생기는 헛헛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떠나야 할 이곳도 조금 더 머물다 보면 본래 살던 곳과 진배없는 일상적 고민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아쉬움이 좀 더 엷어질 것이다. 예전에 한국을 열렬히 동경했던 태국 친구가 서울을 구경와서 떠나기 전날 나에게 실망하듯 툭 던진 말을 곱씹어본다.  

"Life is struggle here, too"



[열심히 리서치한 결과]

1. 카페 주소 및 운영시간
Chin Mee Chin Coffee Shop: 204 East Coast Road, tel: +65 6345 0419; open Tuesday - Sunday 8:30 a.m. -4 p.m. (closed Monday)

Good Morning Nanyang Cafe
20 Upper Pickering Street, Telok Ayer Hong Lim Green Community Centre. Mon-Fri 7:30am to 6:30pm
Sat and Sun 8:30am to 5:30pm

Tong Ah Coffee Shop: 36 Keong Saik Road, tel: +65 6223 5083; open Monday - Sunday 7 a.m.-9 p.m. (Alternate Wednesdays off)
67 Killine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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