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의 글래드웰 글들의 상당수는 비범한 사람들의 비결을 연구한 내용이 많았고 오늘 발견한 "Man and Superman" 역시 비슷한 주제였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가진 선천적인 조건을 짚은 글이었다.
"What we are watching when we watch élite sports, then, is a contest among wildly disparate groups of people, who approach the starting line with an uneven set of genetic endowments and natural advantages."
글 전반부의 핵심은 환경과 유전자라는 요인이 신체조건이 뛰어난 운동선수를 배출하고 이들이 역사에 남는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해 왔다는 것이다.
그걸로 끝났으면 단순한 가십 기사로 끝났을 글이 재미있는 물음을 던지면서 새로운 전환을 꾀한다.
"He wanted to match, through his own efforts, what some very lucky people already do naturally and legally. Before we condemn him, though, shouldn’t we have to come up with a good reason that one man is allowed to have lots of red blood cells and another man is not?"
물음은 단순하다. 남들보다 적혈구 수가 많아서, 즉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 월등한 운동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와의 경쟁은 허용하면서, 신체적 조건을 월등하게 만들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일반 선수들은 왜 허용하지 않는 것인가?
싸이클링에서 불거졌던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파동을 예로 들며 글래드웰은 이들이 행한 일은 자신의 피를 스스로에게 주입해서 산소흡입과 파워향상에 도움을 주는 적혈구 생산을 활발하게 했을 뿐이라 말한다. 적혈구가 원래 많은 사람과 이를 일부러 증가시킨 사람 간의 경쟁은 부도덕한 일인 것인가?
글래드웰이 선택한 글의 마무리는 현대 스포츠가 가진 비젼이다.
"It is a vision of sports in which the object of competition is to use science, intelligence, and sheer will to conquer natural difference.
"스포츠가 내세우는 경쟁의 목적은 과학, 지성, 그리고 자연적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순수한 의지"라는 그의 표현은 여느 스포츠에 적용해도 그럴 듯한 발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반전인가 괴상한 논리일 뿐일까?
"Hamilton and Armstrong may simply be athletes who regard this kind of achievement as worthier than the gold medals of a man with the dumb luck to be born with a random genetic mutation."
약물 파동으로 싸이클계에서 철저하게 비참해진 해밀턴과 암스트롱의 경우 이들이야 말로 스포츠의 비전을 실천코자 하는 운동선수였"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말콤 글래드웰의 가장 최근 생각이었다.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이봐 한국 친구, 이번에 내가 화장품 하나를 들여와서 한국 수입제품으로 홍보하려는데 말이야
김똘똘: 응 한국말이나 국기를 겉 포장에 삽입하면 판매량 증진에 도움이 될 거야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그런데 스네인 크림을 한국어로 뭐라 그래? 한국말도 좀 넣을려고
김똘똘: 응 이름이 뭐라고?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스네인 말이야, 땅에 붙어 기어다니는 그거.
김똘똘: 아, "뱀 크림"이라고 하면 돼. 근데 그게 진짜 한국에서 인기래?
프라핀참놋 위셋타라쿤: 물론이지 내가 봤다니까!

장마가 시작되었다던 한반도는 쨍쨍했다. 해가 하늘 높이 치솟자 그나마 군데군데 드리웠었던 그늘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잠시 몸을 풀고 오늘의 공략지 마늘밭으로 향했다. 근사한 오찬을 즐기기 전에 마늘밭 두 고랑을 헤치우는게 목표였다. #기상청기상
허리춤까지 올라온 잡초들이 가득한 밭이었다. 위태롭게 싹을 올려낸 마늘 줄기들은 손목 굵기의 잡풀들에 포위된 상태였다. 아버님은 지난 한 달 동안 신경쓰지 못하신 결과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마늘을 뽑아내기 전에 이 끈질긴 놈들을 먼저 제거해야 했다. #잡초의운명
잡초는 난초처럼 야리야리한 수준의 이파리들이 아니었다. 굴곡진 인생을 왜 잡초같다고 일컫는지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풀이라고는 하지만 줄기는 지름이 5-6 센티에 이를만큼 우둑했고 그 뿌리는 흙 속에 단디 심지를 두고 있었다. 아버님 표현에 의하면 마늘에게 갈 양분을 중간에서 잡초가 쳐빨아 먹었기 때문이란다. 두 손으로 줄기를 움켜잡고 온몸을 이용해 끌어올리자 주변의 흙이 요동치며 뿌리를 토해낸다. #잡초같은삶
간신히 잡초를 밭에서 몰아내니 낚시의 찌처럼 땅위로 불쑥 솟아오른 마늘줄기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이제 수확의 기쁨만 따먹으면 되는가 싶어 가볍게 잡아올리니 줄기만 툭 끊어지며 정작 흙속의 마늘알은 따라 올라오지 않는다. 수확시기가 조금 늦어 알들이 흙에 박혀버린 탓이란다. 결국 삽질이 필요했다. 한사람은 마늘 주위를 삽으로 열심히 들어내고 다른 사람이 헐거워진 흙에서 마늘줄기와 알을 고스란히 구조했다. 우리의 작업으로 빛을 본 알들은 평소에 접하던 마늘보다 크기가 작았고 이에 아버님은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하셨다. 삽질을 하다가 땅속의 멀쩡한 마늘알들을 삽날로 반토막낸 일들은 말씀 안드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농부의마음
간신히 두고랑을 마치고 세시가 되서야 늦은 점심을 해치웠다. 반나절 동안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은 알코올로 채워졌고 갑작스런 대낮 음주에 놀란 신체는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농부들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리듬을 유지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귀농체험







7) "이코노미스트가 설명해준다" 블로그에 올라온 왜 동남아에서 연무문제는 풀기 힘든 문제일까를 설명하는 글.
궁금했다. 어린 시절 투덜대던 나와 형님을 이끌고 전국을 돌며 우리 가족만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행한 부모님이 왜 유홍준의 글에 그토록 빠지셨는지. 우리 오마니는 심지어 그의 사인회에 나를 동반하시어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에 친필 사인을 받기도 하셨으니 단디 빠지셨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유홍준이 쓴 육지편 문화유산 답사기를 거의 모두 읽어 보았지만 여전히 찾아내지 못한 궁금증은 그가 최근 내놓은 제주도 편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옛날보다 머리가 커져 있었고, 무엇보다 의문을 풀어낼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답사지가 제주도라면 꼼꼼하게 읽어볼 개인적인 동기도 충분했기에,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펼쳤다(라고 하면 상투적이다 못해 한물 간 표현일까요, 사실 펼칠 책장도 없는 e-book이었습니다)
책은 흥미롭게 읽혔고 유홍준의 글은 여전히 뭔가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울렁이게 했다. 이 정도면 여행 에세이로서 최고 덕목을 실현한 것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보자면, 꼭 제주가 아니라도 유홍준의 답사기는 늘 인기였다. 답사지가 갖는 자연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유홍준이 설명해 주는 그곳의 무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꼭 실물로 접하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한때 자가용을 소유한 중산층으로 하여금 설레임에 시동을 걸게 만든 작가, 유홍준의 힘은 어울리지 않는 두가지 - 느슨한 문체와 알게 모르게 풍기는 단정적 권위 - 의 묘한 어울림에 있다.
먼저 느슨하고 수더분한 문체를 말하자면, 그는 교수 시절부터 문화재청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어 가면서 문화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아주 능숙하다. 마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으레 확인하게 되는 여행지와 관련된 블로그 검색글처럼 유홍준의 글은 자칫 돌덩어리들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며 숨을 불어넣는다. 그이만큼 돌들의 숨구멍이 어딘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진 또다른 무기는 'OO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담대함이다. 이를 미술사가로서의 전문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독선이라고 해야 할지는 판단 보류하겠다.
제주도 편에서도 그는 여전히 용자였다.
"그러면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어디를 가질 것인가? 그것은 무조건 영실이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 - 영실)
담대함이라는 기질에서 흘러넘친 그의 버릇은 "최고" 또는 "명작"에 대한 뚜렷한 인식 내지는 집착이다.
"추사는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를 제작했다" (제주도 서남쪽3-대정 추사 유배지 중)
"당시 제주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최고의 그리고 최초의 제주 민속 인문지리서다" (탐라국 순례3-오현단)
"제주의 옛 돌하르방 47기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고" (원당사에서 불탑사로)
"김지하 시인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제주의 서남쪽 2 - 송악산)
평생을 아름다움만 파냈던 유홍준에게서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이 불편하기는 커녕 배워야 할 지식일 수도 있겠다. 그가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온갖 여행서적에 "Must-see"가 판치는 마당에 그가 이 길고 긴 쇼핑 리스트의 길이를 늘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짧은 표현을 통해 유홍준은 아름다움을 계량화하는데 성공하는 한편 (미학과 필수과목으로 통계학을 지정하라!), 징그럽게 무거운 권위를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에 얹어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 책을 파는데 성공했다.







얼마 전부터 하우스에 사람보다 파리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강남 불패신화가 저무는 것일까 아님 서울 마지막 노른자위라며 대책없이 올린 분양가가 원인이었을까. 여튼간에 사람이 거주하지도 방문하지도 않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난 안살림을 맡고 있다.
롯데캐슬 모델 하우스에 만연한 성스러운 침묵을 깨는 것은 식후 아메리카노 한잔을 움켜쥐고 우연히 발길이 닿아 들른 직장인들 뿐이다. 이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성큼성큼 떨어지지만 가만히 살피자면 발끝이 좌우로 떨리고 있다. 떨리는 발끝을 이끄는 것은 불안한 눈빛이다.
내부에 시원하게 쓰여있는 "마감"이 "임박"한 제일 작은 모델인 "23평형 6억9천만원"의 문구가 이 가련한 월급쟁이들을 주눅들게 했을 것이다. 이 치들의 상당한 공통점은 흙묻은 신발을 신은 채 집안에 들어선다는 점이다. 입구에 슬리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건만, 그리고 리셉션에 있는 알바들이 갈아신으셔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도 이미 전시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손쉽게 무너진 저지선 뒤에 버티고 선 것은 나다. 2층 전시장에서 고상해 보이는 원형 뿔테안경을 얹고 앉아 있노라면 올라오는 이들의 값어치를 쉽게 선별할 수 있다.
"예약하고 오셨나요?"
지극히 일상적인 물음이지만 그냥 들러본 이들의 눈빛은 갈피없이 흔들린다. 대부분의 답은 "이거 예약같은거 해야 하나요?"와 같은 되물음이다. 누구도 솔직하게
"내가 이 정도 자금력도 안되는 사람처럼 보이냐"며
나에게 발길질하지 않는다. 물론 예약없이도 구경은 가능하다. 이럴 경우 나는 별다른 설명없이 이들 뒤에 그저 조용히 서있으면 된다. 구매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입을 털기엔 내가 너무 나태해졌다.
짐짓 들어와 살 것마냥 붙박이장부터 확장형 여부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응대하는 나는 왠지 심드렁하다. 이놈의 하우스에 모델처럼 서있는다고 성사되는 계약건마다 내가 인센티브를 들쳐업는 것도 아닌데 뭘. 난 그저 미스테리 쇼퍼처럼 들이닥치는 강남 사모님들만 선별하면 별일없는 것이다.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챙이 너른 모자를 머리에 얹고 주로 나른한 오후에 출몰한다. 처음에는 이들을 몰라뵈고 부실하게 대접했다가 "이년이 거드름을 어깨에 철심으로 박아놨냐"고 지랄하는 바람에 머리털 좀 날려보낸 이후로는 옷차림으로도 걸러지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예약했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제 물어보고 딱 삼초만 기다리면 된다.
카페의 특성상 움직임이 최소화된 공간이라는 점도 내가 그곳을 즐기는 이유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솟는 싱가포르에서는 꼭 숨돌릴 곳이 필요했다. 다만 입안에 먹을 것이 투입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는 아드님은 내 취미활동의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떠나기 전에 여러 종류의 카페를 미리 탐색했다. 싱가포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소위 꼬피띠암(Kopi Tiam)이라 불리우는 공간의 대표격인 동아 스낵바(Tong Ah Eating House)와 킬리니 꼬피띠암 (Killiney Kopitiam) 그리고 시원한 실내에서 나름 향토적인 이름과 맛을 제공하는 굿모닝 난양 카페(Good Morning Nanyang Cafe) 등을 추천받았다. 물론 최근 몇년새 공격적인 모양새를 취하며 싱가포르 거리 풍경에 획일화를 불러오는 여러 체인점(Ya Kun, Toast Box, Coffee & Toast)들도 한번쯤 들러볼 요량이었다.
우선 잊혀진 옛 입맛을 불러올 겸 야쿤에서 카야(Kaya) 토스트를 먹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관광객들로 항상 시끌벅적한 라우빠삿(Lau Pa Sat) 푸드코트가 허름했던 시절 야쿤이라는 찻집이 태동한 곳이 이곳 어느 가게라고 들어 몇번 찾았는데 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혼잡한 곳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또 야쿤 2호점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최근 문을 닫았는지 발견하는데 또 실패하고 결국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체인점을 늘린 결과 어디에서나 보이는 표준형 야쿤 가게로 갔다.


입맛이 변하는 것인지 처음 싱가포르에서 맛보고는 가장 느끼하다 여기며 싫어했던 이 메뉴가 이번 방문때는 가장 먹고 싶은 메뉴가 되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먹고 싶어 친구에게 부탁해 부어먹는 간장소스를 세병이나 받기도 했는데 처음에 몇번 먹다가 귀찮아서 간장만 썩히고 한동안 못먹었더랬다.

지금 싱가포르에는 야쿤의 성공에 자극받은 후발업체들이 득시글 거린다. 굳이 야쿤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돌리면 손쉽게 에어컨이 완비된 카페 체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얻어걸린 곳이 토스트박스였다. 굿모닝 난양 카페를 찾으러 두번이나 시도했다가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길에 들려 시원한 마일로와 아이스 커피를 들이켰던 곳이다. 가격은 1.5불로 머리가 기억하는데 양은 엄청났던 것으로 두눈에 기록되어 있다. 원래 물장사 인심이 후한 건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만.
시원한 카페들을 들러보았으니 꼬피띠암의 전통이 살아있는 옛날식 카페에 가보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꼬피(Kopi)는 커피의 말레이 단어고 띠암(Tiam)은 가게(shop)를 뜻하는 호끼안 단어의 조합이니 그 어떤 단어보다 싱가포르의 다문화 뿌리를 드러내는 말이었다. 물론 나의 한갓진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았던 아내였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내 고집을 관철시켜 동아 스낵바(사실 카페라기 보다는 전천후 스낵바 같은 느낌. 그래서인지 어느 신문에서는 이곳을 카페가 아닌 Tong Ah Eating House 라고도 부릅디다)로 향했다.

정작 그곳에 도착하자 좀 당황스러웠다. 뾰족한 삼거리의 꼭지점에 위치한 건물 1층에 자리잡은 동아 스낵바는 카페라고 부르기엔 안락함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스무 평이 채 안되어 보이는 실내의 절반 이상은 부엌과 냉장고 등이 차지하고 있었고 홀에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달랑 한개씩 놓여있었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는 스트레이츠 타임즈(Straits Times)와 중국어 신문이 잔뜩 흐트러져 있어 주인장이나 단골 전용석이라는 느낌이 제대로 풍겼다. 결국 (창문이나 문도 없는 곳이었으니 실내외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실내에 손님을 위한 자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테이블과 의자들은 우리로 치면 좁다란 인도 위에 서 있었다. 유모차를 탁자 아래 주차시키니 사람들이 지나갈 통로를 막을 정도로 좁다란 길이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수명을 겨우 유지하는 선풍기와 허름한 차양막이 이들이 동아 스낵바 소유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누추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선풍기가 내뿜는 입김같은 밋밋한 바람마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주문을 받는 이가 없어 실내로 들어가 키친 앞을 서성여도 테타릭(Teh Tarik)을 당기느라 여념이 없는 주인장과 사모는 이른 아침에 찾은 관광객에게 관심도 없는 눈치다. 간신히 주문에 성공해 달달한 커피와 이번엔 약간은 두꺼운 카야 토스트를 맛본다. 야쿤 바삭하게 굽진 않았지만 적당한 두께와 부드러운 빵맛이 카야(kaya)잼과 섞이자 새로운 조합을 이룬다. 덥지만 근사한 맛이었다.

근사한 노천 카페를 기대했건만 그냥 한산한 길거리 가게였던 동아 스낵바에서 나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는 불편함이 일었다. 실제로는 3주 내내 쓰레빠에 반바지로 돌아다녀 지극히 편안한 옷차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갈 마음가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컬들의 생활을 흥미롭게 관찰하되 결코 뛰어들어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하는 것이 참 묘한 경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정말로 돌아와야 하는 날,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칙끈 라이스(난 이들의 Chicken Rice 발음이 귀에 착 감기는 것이 참 좋다)가 유명하다는 맥스웰(Maxwell) 푸드코트로 유모차를 밀었다. 유모차에 오래 앉아 지루해 하는 아들에게 사탕수수 음료를 선사하고 테이블 하나를 잡아 자리에 앉았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명한 닭밥집 앞에 줄서있는 누구도, 그리고 주변 테이블에 앉은 어느 외국인도 나와 아들이 오늘 싱가포르를 떠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오늘밤 내가 떠나도 맛난 칙큰 라이스를 즐길 이들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괜시리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달 놀고 먹다가 출근이라니!) 이럴 때일 수록 쓸 데 없는 생각이 번지는 시원스런 카페는 피해야 한다. 사람많은 푸드코트에 그렇게 멍하니 한동안 있었다.

수십 개의 테이블 위에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이 누구의 어깨에나 지워진 그 와중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게 제일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여행이 끝나가는 마당에 생기는 헛헛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떠나야 할 이곳도 조금 더 머물다 보면 본래 살던 곳과 진배없는 일상적 고민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떠나는 아쉬움이 좀 더 엷어질 것이다. 예전에 한국을 열렬히 동경했던 태국 친구가 서울을 구경와서 떠나기 전날 나에게 실망하듯 툭 던진 말을 곱씹어본다.
"Life is struggle here, too"
[열심히 리서치한 결과]
1. 카페 주소 및 운영시간
Chin Mee Chin Coffee Shop: 204 East Coast Road, tel: +65 6345 0419; open Tuesday - Sunday 8:30 a.m. -4 p.m. (closed Monday)
Good Morning Nanyang Cafe
20 Upper Pickering Street, Telok Ayer Hong Lim Green Community Centre. Mon-Fri 7:30am to 6:30pm
Sat and Sun 8:30am to 5:30pm
Tong Ah Coffee Shop: 36 Keong Saik Road, tel: +65 6223 5083; open Monday - Sunday 7 a.m.-9 p.m. (Alternate Wednesdays off)
67 Killine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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