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과 설렁탕 등 각종 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싱가포르에 있다. 빠꾸떼(바쿠테,바꾸테,바꾸떼... Bak Kut Teh)라는 음식이 그것인데 정말 진하게 우려낸 고기 국물에 먹음직스런 돼지갈비가 몇 덩어리 얹혀 있는 아주 간단한 이 차림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헤치우게 하는 힘이 있다. 더위에 쩔어 힘이 없을 때 먹으면 그야말로 힘나는 보양식답게 국물맛도 단순한 고기를 우려낸 것이 아닌 약간의 한약을 함께 달인 듯 한방의 맛이 베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는 또 어찌나 부드럽던지 양손으로 들고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갈비탕이나 설렁탕은 국물맛이 연한 편이어서 김치나 깍두기를 필요로 하지만 빠꾸떼는 국물이 진해 밥에 말아먹기만 해도 별다른 심심함을 못느낀다. 고기가 많아서인지 누추한 호커스톨에 가서 먹어도 6-7 싱달러 정도 하는데 값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맛이라 하겠다.
싱가포르 내 여러 곳에서 빠꾸떼를 먹어봤는데 가장 맛난 곳이 두 곳 있었다. 둘다 MRT 역 근처에다 관광객들이 자주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으니 접근성도 편리하다.
한 곳은 녹색라인 MRT역인 Bugis 역 근처에 있던 허름한 가게안에서였다. 아래 스트릿뷰에서 보면 파란 간판의 Parklane Zha Yun Tun Mee House 라고 쓰인 집이 보인다. 그집에서 맨위의 사진에 나온 모습의 빠꾸떼를 판다. 아래의 스트릿뷰를 확대하면 유리창에 바쿠테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부기스 역에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가 많으니 구경하고 힘이 떨어질 때쯤 들러서 시켜 먹으면 부기스 몇 바퀴는 더 돌 수 있으리라!
또 한 곳은 보라색 라인의 Clarke Quay 근처에서였다. 여기는 제법 갖춰진 음식점이라서 10달러 정도 했던 듯 싶다. 고기가 덜 들어갔지만 역시 그 맛은 뒤지지 않았다. 클락키 역에서 나오면 바로 길건너에 위치한 곳이라 찾기도 어렵지 않다.
최근 홍콩에서 시위가 잦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오랫동안 홍콩에서 숨쉰 민주주의를 중국 아래서도 유지하고픈 사람들의 노력인데 이를테면 자신들을 대표하는 chief executive 를 중국이 임명한 사람이 아닌 홍콩인들의 의지에 의해 뽑고 싶다는 내용의 시위들이 주를 이룬다.
문득 홍콩대 교정에서 봤던 한 남학생이 떠올랐다. 당시 티벳사태를 두고 학생들의 의견을 담은 글들이 빼곡하게 적힌 게시판에 쭈볏거리며 게시판으로 다가선 그는 펜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황급히 휘갈기기 시작했다. 나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황급히 카메라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 학생을 찍었다. 싱가포르에서 살다보니 이런 광경이 낯설기도 했거니와 내가 중국땅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재미있는 것은 게시판에 크게 자리잡은 내용은 "티벳은 과거에도 현재도 중국땅"이라는 다분히 선동적인 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더 학생들이 달려들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대자보류의 압도적인 크기의 종이에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감히 니들이 반론을 해볼테냐는 식의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뭉친 의견게재방식에 익숙한 나는 홍콩대의 상대적으로 작고 허술한 의견게재 방식이 나름 학생들을 소통의 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쭈볏거리며 게시판 문을 열었던 이 청년도 저 작은 공간에 거대한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니들이 티벳을 가봤냐, 안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라는 식의 발언일지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견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이들을 정치적으로 성숙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2년은 확실히 짧다. 작심하고 2008 비엔날레를 돌아다닌 것이 생생한데 벌써 2010년이란다. 게다가 당시에 누리던 학생할인도 이제는 없어졌다.
비엔날레를 돌아다니면서 내내 맴돈 생각은 '엉뚱하다'라는 표현이었다. 장소가 싱가포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발칙함의 백미는 저 외계인 상이었다. 외계인 옆의 UFO는 싱가포르 대법원 건물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계인들이 내린 판결=실정을 잘 모르는 엘리트들이 제멋대로 내리는 판결로 유추될 가능성은 생각 안해봤을까? 아니면 짐짓 모른척 하는 걸지도 모른다. 말랑말랑한 권위주의 국가는 그래서 질기다.
아래 작품은 버마의 상징인 파고다를 설탕으로 만들었다. 비엔날레가 진행되는 내내 코를 찌르는 악취로 시각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던 이 작품은 2007년에 벌어졌던 샤프론 항쟁과 관련되어 철거되네 마네 승강이를 거듭하다가 결국 한쪽 구석에 이와 같이 찌그러져 배치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내 발걸음에 주먹만한 쥐떼가 디저트를 끝내지 못하고 허겁지겁 대피하고 있었다. 파고다를 녹아내리게 하는 직접적 원인은 달콤한 설탕이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쥐떼의 습격도 한 몫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마의 상징은 악취를 풍기며 싱가포르의 뙤약볕아래 녹아내리고 있었다.
말라카를 대표하는 색깔이 있다면 그건 분홍과 빨강을 넘나드는 색깔이 아닐까 싶다. 말라카 인구의 1/3정도가 중국계인 점을 감안하면 빨강에 대한 애착은 말라카만의 특징은 아닐텐데 재미있는 것은 16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을 비롯한 식민세력 역시 이 도시를 빨간색으로 물들이기를 즐겼다는 점이다. 아래는 말라카 시내의 Stadthuys라는 붉은 광장인데 네덜란드가 이 곳을 차지했을 무렵 조성된 진한 분홍색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이 연어빛 나는 색깔을 칠한 이들은 네덜란드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이곳을 식민통치했던 영국인들이다. 그 전에는 평범한 하얀색의 건물들이었는데 자꾸 벗겨진 페인트 칠 사이로 네덜란드산 붉은 벽돌들이 삐죽이 보이자 이에 유지,보수 비용을 아껴보려는 마음으로 아예 빨간 칠을 해버린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밤이 되니 말라카의 색감은 더 뚜렷해졌다. 화려한 등을 하나 둘씩 켜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이 관광도시는 제법 눈에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다.
권력이 사탕처럼 달콤하긴 한가보다. 이가 썩는 줄도 모르고 사탕을 찾는 아이들처럼 권좌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정치인,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현 대통령이 내년 선거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나름 "구국의 결단"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출마선언을 했는데 그가 출마할 Lubao(아로요 아버지의 고향이다) 에서는 그의 결단을 두고 예수님이 사역하기 위해 낮은 곳에 임한 것과 같은 결단을 내렸다는 칭송까지 나왔다(PDI Dec 1,2009). 가톨릭 신자가 절대다수인 나라에서 예수님과 영웅을 비교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 어째 아로요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왜 그는 "(대통령보다) 낮은 곳"에 임했을까? 먼저 그의 뻔한 이유를 들어보자
"After much contemplation, I realized I’m not ready to step down completely from public service....As you all know, I have been asked by the citizens of my home district in Pampangato stay on in public life, so after much soul-searching, I have decided to respond affirmatively to their call"
"숙고끝에, 공직에서 아직 물러날 때가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제 고향인 팜팡가토의 주민들이 제가 공직생활을 이어가길 요청해왔고 이에 수많은 성찰끝에 그들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PDI Nov 30,2009, "Arroyo to run for Congress")
한마디로 아직 그를 원하는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말이었다. 끝없는 자기성찰(soul-searching)까지 했는데 공직에 남아있기로 마음먹은 걸 보면 성찰이 부족했나보다. 아로요가 공직에 남아있으려는 더 와닿는 이유는 주로 권력욕과 면책특권 등이 거론된다. 권력욕이야 뭐 그 자리에 있다면 다들 생기는 욕심이지만 문제는 필리핀의 정치제도가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그것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인 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아로요는 98년 영화배우 대통령 에스트라다와 한 팀을 이뤄 대선에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는데 2001년 서서히 터진 각종 부패 추문 스캔들로 대통령인 에스트라다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이지게 된다. 당시 정당한 법절차에 의한 대통령 탄핵이 사실상 불가피해 지자 국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들고 일어나 그를 내쫓았는데 대통령직이 비워지자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로요가 자연스레 대통령을 승계하면서 그의 갑작스런 대통령직이 시작된다. 민주주의 아래서도 흠결있는 대통령을 바꿀 방법이 없는 제도정치의 한계가 노정된 가운데 아로요는 선거없이 손쉽게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마르코스 이후 독재방지를 위해 대통령의 재선을 법적으로 금지한 필리핀이건만 아로요는 2001년 선거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었기에 2001년 이후 언론의 관심은 온통 아로요가 2004년 대선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다. 급기야 2002년 12월 아로요는 2004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해서 쿨한 정치인 대열에 오르는 듯 하지만 바로 1년 후에 그 약속을 뒤집고 대선출마를 선언한다. 하기사, 은퇴번복을 했을 때 필리핀국민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애시당초 그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가 재선에 나서는 것에 대한 약간의 법리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출마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고 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2004년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아로요가 공직에 남아있고 싶어하는 두번째 이유가 비롯된다. 바로 2004년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획책한 증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Hello Garci" 스캔들이라 알려진 이 사건은 아로요가 당시 선거위원회 위원장과 부정선거를 꾸미는 전화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야당과 시민사회가 탄핵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여당과 친여세력이 이를 저지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사법조치 없이 묻어진 그야말로 폭발성있는 소재의 스캔들인데 퇴임후 자연인이 될 아로요가 이러한 문제들이 터지는 것을 두려워해 최소한의 면책특권을 누리기 위해 하원의원에 도전한다는 의심을 사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한나라의 대통령이 퇴임후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는 사실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운집한 거리에 꽃가루가 내린다. 무슨 장면일까? 피플파워를 즐겨 과시했던 필리핀에서 네번째 피플파워가 터진 것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플파워의 모습은 아니고 매년 치르는 사법시험의 마지막 날 시험장 출구 근처의 모습이란다. 친구의 친구 페이스북에서 봤는데 흥미로워서 퍼왔다.
꽃가루에서 느껴지듯이 시험끝나는 날이 완전 축제분위기다. 사법시험이 이 나라에서도 대단한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한편, 시험이 우리나라처럼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합격율이 지극히 낮다면 저렇게 호들갑 떨다가 시험 망친 다수에게 테러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지 언론이 밝히는 합격율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 2001년에는 사상최고의 합격율을 기록했다는데 그 때 합격율이 32.89%였다고 한다. 평년에는 약 20여 %의 응시자만이 합격의 기쁨을 누린다. 합격율이 지극히 낮은 이런 시험이 끝나고 이들은 왜 즐거워 하는 것일까? 단순히 필리핀 사람들이 낙천적인 탓일까?
두번째 사진에서 약간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무슨 졸업식마냥 홀가분함이 넘치는 이 사진에선 이제 공부에서 해방된 한 수험생을 염색을 시키려는지 그의 머리위로 연신 맥주를 부어대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흰 티를 입은 사내의 등판을 자세히 보면 Ateneo law school이라고 써있다. 여기서 Ateneo는 Ateneo De Manila를 일컫는 통칭인데 이 대학은 필리핀에서 사법시험 합격율 최고를 자랑하는 명문대다. 이 학교의 사법시험 합격율은 전국 최고수준인데 지난 백년간 줄곧 90%에 육박하는 합격율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사진속 인파는 아테네오 수험생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시험보는 거의 모든 아테네오 학생들이 합격한다는 말이니 기다리는 이들도 마음놓고 즐길 수 있으니까 꽃가루도 뿌렸을 테다. 거의 붙은 거나 다름 없으니.
필리핀 사람들이 이처럼 사법시험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렇듯 법조인의 길이 돈과 명예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리핀의 숱한 정치인과 법조인이 사법시험 합격자들이다. 독재자 마르코스도 1939년에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바 있다. 현 대통령인 아로요의 아버지인 Diosdado Macapagal 도 1936년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또한명의 대통령인 Manuel Roxas도 수석이었다. 이거 뭐 사시 수석은 대통령 직행 티켓인가.
The Dreamer Rodelio "Toti" Cerda Acrylic on Canvas 183.5cm x 140.5 cm
전시장에 들어설 때 한 사내가 캔버스 뒷편에 바짝 달라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아직 그림들을 옮기는 중인가 싶어 다른 그림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시간이 지나도록 그 사내가 저 좌절스런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가서 30센티 앞에 얼굴을 들이대 보니 "그림"임을 알았다. 놀랍도록 현실공간으로 튀어나온 작품이었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어떤 분위기라기 보다는 특정 낱말을 풀풀 풍긴다. 좌절, 절망과 같은 류의 단어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듯 하다. 완성된 듯 보이는 자신의 그림 뒤에서(작품 설명에 따르면 저 사내는 작가 자신이라고 한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내의 뒷모습으로 배고픈 예술가의 절망이 흘러나온다. 안자른 것이 아니라 못자른 듯 대충 묶은 머리와 티셔츠속 빛바랜 체 게바라가 모습이 더 안타까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혁명을 팔던 게바라 아이콘에 얼싸절싸하다가 뒤늦게 애들 분유값도 못버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끼는 모습이랄까.
그렇담 왜 화가는 제목을 꿈꾸는 자로 지었을까? 나름 화가로서 밝히는 선언적 의미가 아닐까 한다. 화가라면 부자들이 즐겨 구매하는 그림을 그려 마음껏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꿈일텐데 그런 안락함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 정도 될 것이다. 그림속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는 그림을 그릴때 화가가 다짐했던 바를 어디로 날아가지 못하게 꼭 붙들어 두는 듯 하다.
화가의 절절한 고민이 전해졌는지 이 작품은 Philippine Art Award 2007을 수상작 중 하나가 됐다. 당분간 계속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새 즐겨듣는 라디오에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매일 조금씩 읽어준다. 책으로 읽을 땐 나름 동물들의 캐릭터를 풍자적으로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었는데 전문 성우가 감정을 넣어서 이 웃지못할 상황을 읽어주니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동물농장이 단순히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상대 전선을 비웃기 위해 인기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진지하게 그리는 오웰의 필치가 너무도 매력적이다. 마치 스스로 웃지 않으며 남들을 웃기는 코메디언을 보는 느낌이랄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은 웃지 않고 남을 웃기는 사람들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그만큼 치밀하게 계산한 후에 남을 웃긴다는 이야기다.머리좋은 아이들이 그렇다. 오웰이 그렇고)